라포엠, 신곡 음원 차트 1·2위 석권...라포엠 표 이지 리스닝 음악도 通했다!
2024-04-25

하루가 멀다 하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가수들 사이에서 김소정은 어떻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살아남고 있을까?
최근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마리노블에서 만난 김소정은 다소 늦은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바로 그의 이러한 노력이 모여 오늘날의 김소정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노력에 비해 결실의 열매를 맛보기에는 아직 이른 상태다. 3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그가 조급함을 느낄 법도 하다.
“빨리 잘 돼야 한다는 마음은 있지만, 데뷔한 지 오래 됐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에요. 조바심은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는 될 수 있지만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생각해요. 쫓기는 가운데 시야도 더 좁아지고 그렇게 한다 해서 될 일도 아니잖아요.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겁 없던 데뷔 시절. 지금의 김소정은 그때와 달라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그이기에, 그리고 그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기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당시는 겁이 없었죠. 학생 신분이었기에 신경 쓸 것도 없었고 더군다나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였으니 뻔뻔하기까지 했죠. 물론 지금보다 어려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책임감을 덜 느꼈기에 마냥 신났던 것 같아요. 지금이요? 직업으로 하고 있기에 잘 해야 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죠. 당시는 ‘재미있겠다’가 주된 감정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해야지’가 주된 감정이에요.”
당시도 치열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디션 선배인 김소정의 입장에서도 만감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참자가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힘들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경험해봤잖아요. 시청자들은 모르는 스케줄이나 카메라 밖의 모습들도 많거든요. 한편으론 부러운 것도 있어요. 참가자들은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니 뭘 시도해도 괜찮잖아요. 아직 프로로 데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책임감이 덜한 상황이죠. 그래도 다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라고 하면 선뜻 답하지는 못하겠어요.”
# 김소정을 표현하는 키워드 셋, ‘카멜레온’-‘노란불’-‘우물’
‘카멜레온’
“저는 마냥 밝고 장난기 많은 아이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가수 활동을 하면서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알게 됐어요. 방송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주변 환경에 지배를 많이 당하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카멜레온’이에요. 또 다른 의미로는 음악으로서 추구하는 이상향이나 예술적 분야에 모두 도전하고 싶어요. 연기나 작곡, 작사 등 다재다능함을 추구하는 제가 되고 싶다는 바람에서 ‘카멜레온’이라 표현했어요.”
‘노란불’
“그동안 큰 트러블도 없었고, 뭔가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도 힘든 것을 느끼지 못했으니 제가 예상치 못한 일에 대처를 잘 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가수 생활을 하면서 ‘내가 영민하지 못하고 사회생활도 잘 모르는구나’라고 느낀 적이 많아요.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에 사회생활을 배워가는 과도기적 단계죠. ‘노란불’이 끝나면 ‘녹색불’이 다가오리라 믿어요.”
‘우물’
“제가 필요 이상으로 생각이 깊어 파고드는 면이 있어요. 어쩔 때 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안 해도 되는데 과하게 몰두해서 구렁텅이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는 그런 ‘우물’이 아닌 목마른 사람들의 갈증을 단번에 풀어줄 시원한 ‘우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스물여섯. 아직 남은 인생에 비해 살아온 날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대학교에 진학했고 순탄할 것만 같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김소정이었기에 그의 속내가 더욱 궁금해진다.
“제 인생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중 하나는 가수로 데뷔하고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에요. ‘내가 틀렸구나’라고 인정했던 시기죠. 그러면서 사고방식도 많이 바뀐 것 같고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는 등 성격이 유해졌어요. 예민할 때도 있고 날이 서 있었는데, 그게 많이 무뎌졌죠.”
“다른 하나는 엄마랑 자전거를 타다가 엄마가 사고 난 거였어요. 응급차에 실려 가면서 처음으로 엄마의 보호자가 됐거든요. 가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여태 저는 부모님 아래서 자라는 딸로만 생각했거든요. 내 곁에 있던 사람이 언젠가는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족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으로는 그동안 결연을 맺고 아이들을 돕고 있는데, 통장의 잔고가 없어서 모르고 연체된 적이 있어요.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그 통장으로 받았는데, 연체된 부분이 쑥 빠져나가 욱 한 적이 있어요. 원래 좋은 일을 하려고 시작한 건데 욱 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이런 좋지 못한 상황이 지속되다보면 제가 이상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을 돕는 것도 좋아하고 정신적으로 멀쩡한 사람이 되려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쳐야겠다고 동기부여가 됐죠.”

짧은 시간이지만 김소정이 털어놓은 자신의 속내는 적지 않았다. 선택에 대한 책임, 어른이 될수록 느껴지는 가족의 무게 등은 김소정이 지금처럼 열심히 그리고 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로 충분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수로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그는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을까?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면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는 누구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감정적으로 ‘저 사람이 슬프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공감대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거죠. 다른 하나는 말도 안 되게 매력적이어야 하죠. 어떤 가수는 대체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노래에 끌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정말 매력적이거나 가식적이어도 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지면 살아남을 수 있다 생각해요.”
“저 또한 대중들이 김소정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제 목소리가 생각났으면 좋겠어요. 김소정이라는 이미지가 각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길거리를 지나다 흘러나오는 노래에도 알아볼 수 있었음 하죠.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다 전달할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털어놨을까. 김소정은 그동안 자신을 응원해 준 가족들을 비롯해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문득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 생각난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김소정은 가수라는 자신의 직업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김소정와 주위의 바람대로 그가 머지않아 더 많은 대중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리라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