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인터뷰]‘악의 연대기’ 손현주 “죄를 지었으면 악인입니까?”

메인뉴스_관리자 기자 2015-05-15 02:33:08
드라마 ‘첫사랑’, ‘솔약국집 아들들’, ‘장밋빛 인생’, ‘히트’ 등 배우 손현주는 그동안 순박하면서도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캐릭터로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2012년 방송한 SBS 드라마 ‘추적자’ 이후로 그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이후 2013년 스크린 첫 주연작으로 ‘숨바꼭질’에 출연, 특유의 카리스마로 560만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다.

이밖에도 손현주는 SBS 드라마 ‘쓰리 데이즈’의 대한민국 대통령 이동휘, ‘황금의 제국’의 성진그룹 최동진 부회장의 큰아들 최민재 역을 통해 어둡고도 묵직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그 이미지를 굳혀갔다.

카메라 밖에서는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손현주, 그는 ‘추적자’ 이후 자신의 캐릭터 컬러를 ‘쥐색’으로 표현했다.

“최근 생각해 보니 어느 때부터 제가 어두워졌던 것 같아요. 예전에도 그렇게 이야기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때는 제대로 답을 못했거든요. 생각해보니 ‘추적자’ 이후였던 것 같아요. 4~5년 동안 그랬네요. 지나가는 어머니들이 요즘 왜 안 나오냐고 할 때마다 너무 멀리 온건 아닌가 싶어요. 너무 쥐색의 작품을 많이 했나 싶은데, 다음 작품도 스릴러네요. 이제 다시 한 번 누님, 엄마, 이모, 고모 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후 작품들이야 차지(且置)하고 손현주는 ‘악의 연대기’를 통해 특진을 앞둔 최고의 순간, 최악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 베테랑 형사 최창식 반장으로 돌아왔다. 최 반장은 갈등의 순간 달콤한 유혹들에 빠져 겉잡을 수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악의 연대기’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과연 죄를 저질렀으면 악인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어요. 과거 열정적이었던 모습을 잃어버리고 세월과 생활에 찌들어 타락한 모습조차도 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잘못이죠. 이 작품은 아마 그런 것에서 출발하지 않나 싶어요. ‘이 정도면 어때’라는 것이 ‘때’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최 반장의 잘못이죠. 편한 동료들한테도 감출 수빡에 없었던 최 반장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 때문에 촬영 내내 힘들었죠. 촬영이 끝나고 난 다음 문득 여기에는 ‘내 모습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지금 깨끗한가’라는 의문점을 던져주는 게 백운학 감독의 ‘악의 연대기’죠.”

‘악의 연대기’ 촬영 기간 유독 외로웠고 때문에 힘들어했던 손현주는 계속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학로 당시를 돌아보면 그동안 내가 살면서 때가 묻었다는 생각을 피해갈 수 없어요. ‘이 정도인데, 할 수 있는 것 아니야?’라는 게 큰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그럴수록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계속 생각하죠. 대학로에 대한 미안함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연기 잘하는 친구들의 손을 끌어주는 사명 아닌 사명을 가지고 있죠. 손을 끌어준다는 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대학로 친구들은 보면 오디션을 보는 날짜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걸 가르쳐주는 거죠. 나머지는 후배들의 몫이죠.”

간단히 말하자면 ‘악의 연대기’는 후반부의 강한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 느끼는 부담감도 결코 적지 않았다.

“오히려 반전에 대한 생각을 일부러 안했어요. 시나리오를 봤을 때도 의식적으로 멀리 했었죠. 요즘 관객들 수준이 높아서 거짓말 하는 걸 금방 알아요. 현재 최창식 반장의 모습만 봤었죠. 이제까지 다른 작품들에서는 분위기가 무거워도 동료에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모든 사실을 감추고 은폐하다보니까 더 큰 일이 벌어지고, 그걸 혼자서 짊어지고 가는 게 힘들었어요. 백운학 감독하고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도 그랬네요.”

반전을 담은 작품이기에 입을 여는 데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 손현주는 현재 숙제검사를 받는 학생의 마음으로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언론 시사회 때가 가장 불편했어요. 그 시간이 숙제검사를 받는 기분이었죠. 기술시사 때는 완벽하지 않아도 같이 보는데, 단상에 올라가서 점수 받는 기분이 들었을 때는 마치 꾸중을 듣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긴장됐던 것 같아요. 손익분기점(BEP)는 채워야 할 텐데요. 허허”

‘연기 신’이라는 호칭을 언급하자 손현주는 크게 손사래를 치며 이를 거부했다. 쟁쟁한 선배들 탓이기도 하지만, 그는 정점은 없다 여기는 사람들 중 한명이기 때문이었다.

“연기의 정점이 있었으면 다른 콘텐츠를 만들었지, 아마 영화나 잡지 등을 만들지 않았을 거에요. 계속 길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괜히 그런 것들을 의식하면 작품 자체에 충실하지 못하고 다른 걸 해야 하나 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배우라는 호칭 보다는 연기자라는 호칭을 많이 써요. 스스로 채찍질을 하는 거죠. 배우마다 디테일한 것을 뽑아내는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손현주는 끝으로 ‘악의 연대기’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당부하며 후배들에게도 따뜻한 조언의 한마디를 남겼다.

“‘악의 연대기’는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할 긴장감과 재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세월의 때가 묻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의미 깊은 영화라 할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 백퍼센트 만족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할 수 있어요. 후배들한테도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숨지 말고 나와서 당당하게 하라고 해요. 들어가게 되면 병이 되거든요. 그러다보면 ‘악의 연대기’처럼 되는 거죠. 세상살이는 살아 숨 쉬는 동안 계속 아픈 것 같아요.”

이처럼 ‘연기자’ 손현주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영화 ‘악의 연대기’는 현재 극장가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