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인터뷰] ‘섬. 사라진 사람들’ 이현욱 “관객 설득하는 근본적인 힘? 솔직함”

메인뉴스_관리자 기자 2016-02-29 11:36:01
진보연 기자 ent@ 배우 이현욱의 얼굴에는 차가움과 날카로움, 진중함 그리고 약간의 개구짐이 있다. 그가 가진 다양함은 곧 작품 속 캐릭터로 이어진다. 무대와 브라운관, 스크린을 오가며 조용히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그가 이번엔 카메라 뒤에서 또 하나의 시선으로 관객들과 마주했다.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감독 이지승)은 염전노예사건 관련자가 전원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기자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사건 현장을 모두 담은 취재용 카메라 역시 종적을 알 수 없이 사라져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사건 목격 스릴러로, 지난 2014년 2월 염전에서 수년간 감금당한 채 강제 노역과 폭행을 당하고 임금을 착취당한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른바 '염전노예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사실 이 사건은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이미 많이 다뤄진 내용이었고, 이를 영화화 하는 건 다소 진부하지 않을까. 이 의문에 대해 이현욱은 영화가 그 사건 하나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영화가) 시사하는 것들이 더 많다고 느껴졌어요. 감독님께서 담고자 하셨던 여러 가지 메시지들을 대본만으로는 온전히 느끼기 힘들었는데 제가 촬영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더해져 나온 것을 보니 좀 알겠더라고요. ‘염전노예사건’에 관한 내용은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사회 고발 프로그램에서 많이 다뤘던 내용이었고, 사실 실화였던 사건의 팩트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게 너무 노골적이기도 하고 선정적이기도 하잖아요. 이 작품은 ‘염전노예사건’에 대한 단순한 고발이라기 보다는 인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실제 사건이 발생한 지역이나 특정 인물을 타겟으로 삼은 게 아니라 사람들의 전반적인 인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염전에서의 사건을 모티프로 했지만, 단순히 그 사건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시사하고 있는 거죠”

영화는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며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메이킹 영상 방식을 사용했다. 총 90분가량의 러닝타임 가운데 60분 정도를 극 중 촬영 기자인 석훈(이현욱 분)이 촬영한 영상을 관객들이 보는 형식으로 작품에 현장감과 긴장감을 더했다. 이지승 감독은 이에 대해 “편집되지 않은 상태인 것처럼 보여야 관객들이 작품 속에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극 중 카메라 촬영기자 역을 맡은 이현욱은 촬영 내내 스태프와 배우 사이를 오가며 고군분투했다.

“배우지만, 반은 스태프의 입장으로 움직인다는 것에 대한 재미가 있었어요. 새로운 경험이었죠. 이전에 카메라로 사진은 찍어봤지만, 영상 작업은 처음이어서, 촬영 전에 감독님과 만나서 카메라 작동법이나 앵글 잡는 법, 노출 같은 부분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공부도 했어요. 핸드헬드 촬영 방식을 사용하다 보니, 아무래도 화면에 흔들림이 많아요. 찍고 나서 모니터하면서도 보시는 분들이 (화면의 움직임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반대로 얌전했다면 긴장감이 확실히 떨어졌을 것 같아요”

보통의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한다. 하지만 ‘섬. 사라진 사람들’ 속 이현욱은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직업을 가진 극 중 인물의 특성상, 카메라 뒤에 가려져 얼굴을 보이는 일이 드물다. 영화 속에서 주요 인물이지만 얼굴이 제대로 나오는 신은 몇 없는 아이러니함을 안고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좋으신 감독님, 선배님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작품이라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이 작업이 저에게 득이면 득이지 절대 실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화면에 얼굴이 조금 더 많이 나온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많다는 생각은 안 해요. 감독님, 선배님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뒀어요. 영화 ‘더 테러 라이브’의 (김)대명이 형도 목소리로만 영화에 등장했잖아요. 대명이 형 또한 그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경험하고 배우는 것들에 대한 부분을 많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이 작품도 화면에 얼굴이 나오는 정도로만 따진다면 저에게 큰 메리트가 없는 작품일 수 있죠. 상투적으로 ‘아, 이걸 통해서 배우로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겠어’ 이런 생각으로 참여한 것 또한 아니고, 그냥 정말 단순하게 같이 작업하고 싶었고 그래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얼굴이 한 컷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시작했다던 그는, 오히려 감독님의 배려로 자기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원래 화면 속 등장 비중이 크지 않았던 역할이니만큼, 캐릭터를 잡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이현욱은 말한다.

“메이킹 영상 형식이고, 리얼 다큐처럼 보여야 하는데 캐릭터를 잡아버리면 굉장히 작위적일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극 중 제 모습은 어딘가 조금 어리숙하고 어설퍼 보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서면 다들 어색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그 부분이 드러나도록 신경을 많이 썼고, 감독님도 제 연기에 동조를 해주셨어요. 석훈이라는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거기서 연기 욕심을 냈으면 밸런스가 다 깨졌을 것 같아요. 수위조절 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일상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것과 일상을 그대로 보이는 것은 다르니까요. 또 대본을 보는 것과 현장은 다르기 때문에 걱정도 많았어요. 어떤 현장일지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페이크 다큐 형식인데다가 제가 직접 촬영해야 하는 것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현장에서 리허설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특정 부분에서 미끄러진다거나 힘든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는 소리라든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캐치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극 중 저는 그런 부분을 잘 살려야 하는 역할이었어요. 효주 누나가 앞에서 끌고 가면 저는 뒤에서 받쳐주는 거죠. 제가 찍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관객들은 따라오는 거잖아요. 제가 거기서 같이 호흡하지 않으면 작품에서 필요 없는 인물이 되는 거죠”

‘섬. 사라진 사람들’은 보름에서 한 달 정도의 기간을 거의 매일 촬영하는 강행군으로 진행됐다. 그는 영화의 배경이 된 곳에 대해 추운 날씨로 인해 사람들도 거의 없어 한산하고 조용했고, 주민들도 밖에 잘 나오지 않아 촬영 내내 만난 사람이 숙소 주인아주머니와 식당 아주머니를 제외하고는 다섯 명 정도였다고 전했다.

“섬 자체가 되게 작고 조용해요. 다 도는데 한 시간 반 정도밖에 안 걸리더라고요. 분위기도 잔잔해서 좋았어요. 촬영장에선 또래가 저랑 (류)준열이 밖에 없었어요. 둘이서 방을 쓰면서 미래에 관해 이야기 하기도 하고, 연기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눴어요. 중간에 친구들이 섬에 찾아와 주기도 했어요. 지금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처음엔 모여서 연기적인 부분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오디션 정보도 공유하면서 친해졌어요. 연기하는 친구들이 13명 정도 있고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의 친구, 후배, 형들도 있어요. 어쩌다 이렇게 많아졌는지 모르겠는데 더 이상 증원하기 어려워서 이제는 마감했어요. (웃음) 저희가 같이 다니면서 뭘 한다기보다, 단순히 스터디 개념으로 만났던 친구들이라 서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고 같이 있으면 즐거워요”

이현욱의 필모그래피는 독립영화, 상업영화, 드라마 그리고 연극까지 여러 장르의 다양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연기할 때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증명하듯,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작품 속에서 많은 이들의 인생을 경험했다.

“저에게 드라마, 연극, 영화 등의 많은 장르 가운데 가장 좋은 걸 묻는 것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문제 같아요. (웃음) 어떤 것 하나가 가장 좋다기보다는 매력이 다 다르거든요. 호기심도 많고, 욕심도 있는 편이라 좋은 기회가 오면 무조건 해보고 싶어요. 제가 생각해도 다양한 작품을 했어요. 독립영화도 하고, 일일드라마, 미니시리즈, 상업영화도 하고 연극도 했고, 이번 작품은 또 페이크 다큐 형식의 영화고요. 특히 작년에는 스크린이나 브라운관보다 무대에서 관객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물론 영화나 드라마 보다 대중적인 노출이 적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연기적 갈증을 무대를 통해 표출할 수 있었어요.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좋은 공연의 기회가 온다면 마다할 이유 없이 하고 싶어요”

이현욱은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해 한참의 고민 끝에 솔직해지고 싶다고 신중히 답했다.

“이 질문은 받을 때마다 어려운 질문이에요. 그리고 항상 제 자신에게 묻는 말이기도 해요. 저는 연기하는 동안 솔직해지고 싶어요. 작위적이기보단 솔직함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요. 때로는 꾸며내서 돋보이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힘은 솔직하고 진실한 것이라고 믿어요”

한편 흔들리는 화면을 통해 현실의 불편한 민낯을 꾸밈없고 솔직하게 전하는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은 오는 3월 3일 개봉한다.


[메인뉴스 진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