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인터뷰] ‘섬. 사라진 사람들’ 박효주 “‘이유 없는’ 정의로움, 당연함이 낯설었다”

메인뉴스_관리자 기자 2016-02-29 11:39:09
진보연 기자 ent@ 형사, 요원, 홈쇼핑 MD, 의사, 교수 등의 다양한 직업군의 캐릭터들을 소화하며 ‘전문직 캐릭터’ 전담 배우라고 불리는 배우 박효주가 이번에는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로 세상을 비추며 의문을 던지는 사회부 기자로 관객들 앞에 섰다.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감독 이지승)은 염전노예사건 관련자가 전원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기자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사건 현장을 모두 담은 취재용 카메라 역시 종적을 알 수 없이 사라져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사건 목격 스릴러로, 지난 2014년 2월 염전에서 수년간 감금당한 채 강제 노역과 폭행을 당하고 임금을 착취당한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른바 '염전노예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박효주는 극 중 공정뉴스 TV 사회부 기자 이혜리 역을 맡았다. 강한 신념을 지닌 열혈 취재 기자인 그는 진실과 정의를 위해 위기의 상황에서도 사건 현장에 몸을 던진다. 주위의 만류에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혜리의 모습 속에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고 박효주는 말한다.

“제 몸 중에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귀예요. 귀가 접혀있는데 이 귀가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귀래요. (웃음) 극 중 혜리도 그렇지만 저도 고집은 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남이 뭐라고 해도 꺾이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의지력이 있거든요”

이러한 소신 있고 똑 부러지는 성격은 작품 선택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박효주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미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다뤘던 ‘염전노예사건’을 왜 영화화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는 작품에 대한 설득력이 필요한 것은 어느 영화든 마찬가지지만, 특히 실화를 모티프로 한 사회성 짙은 작품은 그것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지승 감독은 ‘과연 우리가 아는 진실이 진실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싶다.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또 하나의 왜곡된 시선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고, 박효주는 출연을 결정했다. 하지만 촬영하는 동안에도 작품 그리고 자신이 표현하는 혜리에 대한 의문과 고민은 계속됐다.

“극 중 혜리의 행동에 대해 ‘왜 이렇게까지 하지? 왜 이렇게 움직이지?’ 등 의문이 들었고 이에 대한 이유를 계속 부여하려고 애썼어요. 저 포함 보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혜리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큰 계기 없이) 그냥 정의로운 인물이 우리에게 낯설어졌나’라는 감독님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저 역시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꼭 행동에 앞서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가뒀던 것 같더라고요. 사실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되는 건데 말이죠. 직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잖아요. 정의 내릴 수 없는 세상 속에 살지만 그게 각자가 가지는 양심 속 꺼지지 않는 한 가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혜리가 기자로서 진실하게 어떤 사실에 다가가고 글을 쓰는 것과 제가 배우로서 열정을 지키는 것을 같은 맥락으로 봤어요”

‘섬. 사라진 사람들’은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며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메이킹 영상 방식을 사용했다. 총 90분가량의 러닝타임 가운데 60분 정도를 극 중 촬영 기자인 석훈(이현욱 분)이 촬영한 영상을 관객들이 보는 형식으로 작품에 현장감과 긴장감을 더했다. 실제로 작품 속에는 박효주와 이현욱이 촬영한 부분도 포함됐다.

“사실 작품의 소재보다는 형식에 더 끌렸어요. 메이킹 영상이라는 촬영 방식이 굉장한 매력으로 느껴졌죠. 평소 다큐멘터리나 페이크 다큐 형식의 외국 영화들을 좋아했는데, 이런 작업을 할 기회가 흔치 않으니 정말 반가웠어요. 기회가 온다면 한 번 더 작업해보고 싶어요. (웃음)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었는데, 다시 하면 그 시간을 아끼면서 더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연기의 본질은 당연히 바뀌지 않겠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새로운 감정들을 많이 느끼고 배웠어요”

그간 오랜 연기 경력이 쌓이는 동안 그 안을 수많은 작품으로 채워왔을 박효주는 유독 이번 ‘섬. 사라진 사람들’ 작업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에서 비롯된 감정들이 피부로 와 닿았다고 말한다.

“촬영하는 내내 ‘우리’라는 것의 의미를 굉장히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유독 스태프들과 함께 만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영화예요. 배우와 감독, 촬영 스태프들이 모두 같이 뛰면서 촬영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각별해요. 이번 작품은 저에게 큰 공부가 됐고,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시도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그래요. 영화를 사랑하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깨우쳐준 작품이에요. 좋은 크루들만 모여서 작업하기란 쉽지 않은데 (이번 촬영에서) 정말 좋은 기운을 받았어요. 원래 잘 울지 않는데 작품 끝나고 정말 오랜만에 울컥했어요”

박효주는 이번 작업을 통해 현실에 더 공감하고 더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영화가 다루는 하나의 사건을 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초점이 조금은 또렷해졌다. 그는 진실은 많은 불편함을 동반하고, 불편함이 싫어 자꾸 피하려다 보면 그것은 무관심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섬. 사라진 사람들’은 제 안의 지루함을 해소해준 작업이에요. 타성에 젖었을 때 즈음 신선함으로 다가왔어요.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지속해서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그걸 빨리 인지하고 벗어던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행히 저는 그걸 알았고 이번 작품은 그 부분을 한번 환기하는 작품이에요. 저라는 사람의 성장 과정인 셈이죠. 이번 작업을 통해 잊었던 감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좋은 에너지도 많이 받았어요. 이 작품 이후에는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질 것 같아요”

한편 페이크 다큐 형식을 통해 현실의 불편한 민낯을 꾸밈없고 솔직하게 전하는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은 오는 3월 3일 개봉한다.


[메인뉴스 진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