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오랜만에 영화로 컴백해서일까. 어느새 데뷔 20년 차를 맞은 이요원은 갓 데뷔한 신인 배우처럼 “스크린에 등장하는 제 모습을 볼 때마다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어보였다. 청순함을 가득 지녔던 데뷔 초 잡지 모델 때와는 달리, 현재의 이요원은 ‘세련된 여성’의 옷을 입은 채 하는 작품마다 ‘걸크러쉬’를 일으켜 다수 여성 시청자들의 선망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4년 만에 선택한 스크린 복귀작은 휴먼 코미디였다. ‘그래, 가족’은 핏줄이고 뭐고 모른 척 살아오던 성호(정만식 분), 수경(이요원 분), 주미(이솜 분)에게 예고 없이 막내 동생 낙(정준원 분)이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치열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극중 이요원이 맡은 수경 역은 까칠하고 톡 쏘는 말투에 공격적인 태도로 외형을 감쌌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방송국 입사 후 10년 간 쉬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기다렸지만 금수저 후배에게 밀리고 느닷없이 등장한 막내 동생 탓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된 상황. 그 속에서 이요원은 은근한 허당기(?)까지 선보이며 인간적인 매력을 뽐냈다.
“시나리오에서 걱정했던 부분이 영화로는 괜찮게 나와서 좋았어요. 글로 볼 때는 극대화되어있어서 많이 걱정도 됐고 그런 장치들이 필요할까 싶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었죠.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최대한 담백하게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연기했어요. 영화에서는 편집 된 장면도 많아서 아쉬워요. CNN뉴스 화면 보면서 연습하는 장면도 그렇고 남편 이야기도 편집 됐어요.”

우려와는 달리 이요원은 영화를 상당히 감명 깊게 본 듯 했다. 함께 출연한 이솜은 인터뷰를 통해 “이요원 선배님이 시사회에서 가장 많이 우셨다”고 밝혔다. 도회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그녀가 펑펑 우는 건 상상이 가질 않았다.
“저도 제가 그렇게까지 울 줄 몰랐어요. 어쨌든 연기를 했고 시나리오면 리딩이며 낙이 연기를 봤기 때문에 그냥 눈물 포인트가 있다는 정도만 알았죠. 그런데 저 시나리오 읽고도 울고 리딩할 때도 울었어요.(웃음) 그래서 완성본을 보면 눈물은 조금 날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까 낙이가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고요. 다 울었으니까 안 울 줄 알았는데 어째 또 눈물이 났네요. 원래 눈물 날만큼 슬픈 영화를 찾아보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희 영화는 누구나 건드리는 포인트가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가족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나 봐요.”
이요원은 ‘그래, 가족’을 하면서 실제로 자신에게 여동생만 있다는 사실이 다행일 정도라고 느꼈다며 장난스레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경은 온 가족에게서 시달린다. 여동생인 주미(이솜 분)매일 돈 달라고 꼼수에, 아버지와 장남인 성호(정만식 분)은 주구장창 사고를 치며 수경이 온전히 이 가족을 이끌어간다.
“수경을 본인 같이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어요. 남매나 여러 설정된 상황들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막내를 봤을 때, 가족들의 반응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뻔한 장치가 있어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소소한 재미도 있어요. 실제로 여동생과는 어릴 때는 많이 싸웠어요. 제가 별로 잘해준 기억이 없어요. 성인이 되고 삼십대가 되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됐어요. 서로 가장 많이 의지도 하면서 잘해주려고 노력해요. 예전에 너무 괴롭혀서 스스로의 보상심리랄까요?(웃음) 저는 약간 츤데레 스타일이에요.”

유독 이요원의 필모그래피에는 어느 순간부터, 똑 부러진 여성 캐릭터가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선덕여왕’의 덕만 역부터 ‘황금의 제국’, ‘욱씨 남정기’ 그리고 최근 종영한 드라마 ‘불야성’까지 여성 배우라면 부러워할 만한 역을 도맡아 했다. 그녀의 행보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했다.
“왜 그런 역이 많이 들어 온지 모르겠어요. ‘황금의 제국’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그 때가 제 첫 재벌드라마였고 기업드라마였어요. 그 역할을 이전에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그 이후부터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여성 캐릭터를 향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어요. ‘걸크러쉬’나 ‘센 언니’ 이런 용어들도 예능에서 먼저 나오고부터 드라마 캐릭터로 만들어졌잖아요. 저도 여자지만, 그런 멋있는 캐릭터를 보면 되게 부럽고 좋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는 아니지만, 직업으로라도 멋있는 여자 역할을 하면 어떨까 싶어서 끌려서 했던 것 같아요.”
이요원의 소신 있는 선택에 많은 대중은 환호했다. ‘불야성’을 통해 생긴 팬덤이 그것을 제대로 입증했다. 그리고 그 인기가 중국으로까지 뻗치면서 큰 사랑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제가 서이경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매력을 팬 분들이 똑같이 느끼신 것 같아요. 제가 생긴 것만 보면 걸크러쉬랑 되게 어울리지 않고 상관이 없는 거 같은데요. 대리만족을 하신 게 아닐까요?”라며 나름의 이유를 분석했다. “높은 시청률의 프로그램만 팬덤이 생기는 줄 알았는데 신기해요”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요원에게도 쉬어가는 타임이 필요해보였다. 이제껏 전문직을 줄곧 해왔지만 경찰, 변호사, 검사 등의 직군에는 접근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떠나, 현재 자신의 나이에 맞는 흔한 여성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을 내비쳤다. 더불어, ‘라라랜드’를 감명 깊게 본 영화로 꼽으며 로맨틱 코미디의 여자주인공을 꿈꾸기도 했다.
“예전 작품인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것들을 다시 하고 싶어요. 계속 지금과 같은 역만 맡으니 저도 힘들더라고요. 제 기분까지 캐릭터에 동화되는 기분이에요. 유쾌한 걸 찍으면 저도 유쾌해지고 재미있어지는데 지금은 스태프 분들도 힘들어하세요. 20대 때는 이상하게 정극과 시대물에 꽂혔어요. 선생님들한테 배우면서 함께 호흡 맞추는 게 더 좋았거든요. 그래서 ‘불야성’을 찍을 때도 후배들보다 선배들이랑 하는 게 더 편하긴 했어요. 지금은 로맨틱 코미디 같은 것도 찍었으면 좋겠어요. 20대에 하고 싶어 했어야 했죠. 어차피 정극이란 건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말랑말랑한 작품이 하고 싶다고 하니까 팬 분들이 왜 이제 와서 그러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나이 앞에 4붙기 전에 해보고 싶어요. 너무 로맨틱이나 멜로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제 여자 또래의 실생활이 담긴 멜로요.”
엄청난 인기에 영화 개봉까지, 즐거운 일들이 선물처럼 쏟아지는 와중이라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인터뷰 전날 진행된 VIP시사회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영화배우들에게 VIP시사회는 다반사라 의아한 게 당연했다. 물론, 동료와 대중에게 첫 공개 되는 자리인 만큼 남다른 의미는 있겠으나 이요원은 그 두근거림을 넘은 듯 했다.
“너무 즐거웠어요. 제가 VIP시사회에 동료 분들을 초대한 건 처음이거든요. 드라마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겠지만, 다들 오겠다고 말하시는데 즐겁더라고요. 이런 과정들이 신선하고 설레었어요. 또, 이런 제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 창피하기도 했어요. 동료들이기 때문에 영화를 어떻게 봤을지 조심스럽잖아요. 같은 동료이기 때문에 그저 좋게 말해줄 수도 있고요. 다들 좋은 말씀만 해주시던데요?(웃음)”
이제 이요원에게 엄두 못 낼 장르는 없다. 가지각색의 이미지를 입었다가, 주체적 여성 캐릭터까지 완전히 도맡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온 그녀에게 ‘그래, 가족’은 휴식 같은 또 다른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래, 가족’이 내 형제 자매들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전화통화 할 수 있는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되게 전화를 잘 안하잖아요. ‘전화 한 통 할 수 있는 영화’가 되면 좋겠어요.”
이예은 기자 90090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