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유지훈 기자] 2012년 TV도쿄에서 방송된 ‘고독한 미식가’는 이노가시라 고로(마츠시게 유타카 분)가 핵심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가 어떤 사건에 휘말려 고군분투하는 내용은 없다. 그는 그저 외근 후 “배가 고파졌다”며 식당을 찾아 들어가 차려진 음식에 집중한다. 그리고 빠져나올 수 없는 묘한 매력과 함께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이렇듯, 이야기의 주인공이 무조건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푸드 라이프스타일 채널을 표방하는 케이블방송 올리브TV도 지난해 ‘음식이 주인공’인 드라마 ‘고양이띠 요리사’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단순히 음식을 중심으로 하는 것을 넘어서서 ‘베트남 음식’에 초점을 맞춘다.
드라마는 맹인 이수지(김소라 분)와 베트남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여문준(이기우 분)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이수지는 친구 강민경(한유이 분)을 따라 베트남으로 오게 되고 현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던 중 우연히 여문준의 요리를 맛보게 된다. 여문준은 눈이 보이지 않는 이수지가 음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동화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음의 벽을 허물어 간다. 그리고 둘의 러브라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시청자는 어느새 베트남 요리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이 드라마는 2015년 ‘유미의 방’을 연출했던 김영화 PD가 메가폰을 잡아 탄생됐다. 맹인 여자주인공, 베트남 요리, 이국적인 배경에서의 사랑까지, ‘고양이띠 요리사’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빠져드는 작품이다. 2017년 상반기 베트남에서 방영을 앞두고 있다.
Q. ‘고양이띠 요리사’는 어떤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나
“‘식샤’를 비롯해 다양한 음식 드라마, 드라마 형태의 음식 소개 프로그램은 많아요. 하지만 레시피에 집중을 하진 않더라고요. 주로 완성된 음식을 먹는 먹방이죠. 제가 올리브 채널에 1년 반 정도 있다 보니,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느꼈어요. 그 재료가 하나하나 섞여서 하나의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에 집중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하면서 만들게 됐죠.”
Q. 드라마의 주 촬영지는 어디였는가.
“호치민과 해안도시에서 주로 촬영했어요. 기획이 나오고 괜찮은 장소들을 섭외하고, 그리고 나서 작가님이랑 이야기를 나눴죠. 한 달 정도 촬영했어요. 등장인물이 많지 않았고, 일부러 요리에 집중하기 위해 한 장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수가 많았어요. 오토바이 소음, 그리고 우기다보니 비가 자주 오더라고요. 소리 때문에 몇 번이고 재촬영이 있었고 ‘이러다 시간 안에 못 끝내겠다’ 싶더라고요.”
Q. 베트남 촬영을 하며 한류를 체험하기도 했는가.
“우리 명함을 주면, 처음에 인사할 때랑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기우 씨랑 촬영 호텔에서 묵는데 한 두 명 정도 여자가 ‘촬영장을 알려달라’고 해서 ‘얼마나 오겠나’하는 마음에 알려줬어요. 그런데 다음날 엄청 많은 사람이 찾아오더라고요. 하지만 공안의 제제는 엄청 심했어요. 그리고 하노이 쪽 사람들은 한국사람에 대해 조금 불편해 했어요. 월남전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Q. 현지 촬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한국 스태프는 30명 정도 갔어요. 나머지는 현지 스태프를 썼죠. 그런데 베트남이 공산국가다보니까 여덟시 이후에 일을 안 해요.(웃음) 저희가 촬영하면 보통 새벽 세시, 네 시까지 찍고 아침 여덟시에 모이는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두 배를 주겠다고도 안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한국식으로 맛있는 거 사주고, 술고 사주고 달래가면서 했어요.”
Q. 여자 주인공이 맹인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그 설정 덕분에 드라마가 더욱 특별해졌다.
“카페에 있었는데, 건너편에 시각장애를 가진 분이 있었어요. 그 분 혼자만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어요. 디저트, 케익을 먹는데 자꾸만 궁금해지더라고요. ‘시각장애인이 접해본 적 없는 음식을 먹으면 어떤 기분일까’라고요.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모건 프리먼이 바다를 한 번도 못 가본 사람이잖아요. ‘바다가 파란색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고 한 게 기억났어요. 그래서 이 부분을 확장시켜서 음식 드라마를 만들기로 했죠. 그때부터 취재가 시작됐고 인터뷰를 하면서 디테일을 잡았어요.”
Q. 그 디테일에 대해서 듣고 싶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음식에 대해 어떻게 느낀다고 판단했는가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아주머니를 인터뷰했는데, 망고를 모르시더라고요. 우리나라에 온지 얼마 안돼서 그렇대요. 맛과 질감을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모르셨어요. 그래서 그 드라마에 망고를 집어넣기도 했어요.”
Q.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를 집필한 진유정 작가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음식이나 베트남 문화, 이런 것들을 오래 보신 분이에요. 저희가 음식을 선정하더라도, 이 음식이 남부의 것인지 중부의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었어요. 인터넷에 쳐도 알기 힘들더라고요. 또 음식 레시피에 대한 자문을 다 해주셨어요. 언제 먹는지, 이 음식에 어떤 이야기 숨어있는지 까지요.”
Q. 드라마는 호흡이 느린 편이다. 때문에 시청자로서는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연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음식을 소재로 했다면, 호흡이 길어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어요. 음식에 집중하는 순간만을 시간을 많이 할애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배우들과 이야기 할 때도 ‘등장인물이 많지 않으니 감정에 집중해서 천천히 기자’고 말했어요. 자세히 보면 배우들의 대사가 많지 않아요. 음식에 대한 설명이 훨씬 더 많아요. 또 이수지-여문준이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천천히 묘사하고 싶었어요.”

Q. 호흡이 느린 드라마인 만큼, 대중이 이질감을 느꼈을 것 같다. 그리고 시청률도 다소 아쉬웠다. 연출자로서 감내할 수밖에 없었나.
“첫 번째로는 ‘고양이띠 요리사’가 올리브라는 채널이 만드는 다양한 콘텐츠 중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시청률을 떠나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 드라마는 악역도 없고, 주인공은 음식이에요. 이렇게 접근하다보니 시청률은 어쩔 수 없었죠. 물론 잘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있었지만, 최대한 보여줄 거 보여주고, 기획 의도에서 벗어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Q. 드라마는 단순히 레시피를 보여주는 걸 넘어서, 레시피와 함께 동화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 수지라는 아이는 중학교 때 시력을 잃었어요. 그래서 그때의 기억밖에 못해요. 재료와 음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거죠. 남자 주인공은 다 알고 있으니까, 수지가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음식을 접하게 된다는 마음으로 설명해주죠. 그래서 동화를 차용하게 된 거에요. 너무 동화로 가면 유치하지 않을까 했는데,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봤습니다.”
Q. 음식에 초점을 두다보니 캐릭터들의 많은 이야기를 풀지 못했던 것 같다. 엔딩도 단순히 남녀 주인공이 재회하는 것이었다. 아쉬움이 남지 않았는가.
“준비했던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한 건 맞아요. 그래서 조금 아쉬웠어요. 또 원래 엔딩은 헤어지는 거였어요. 그런데 욕 먹을 거 같더라고요?(웃음) 취재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과 일반인이 이어가게 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걸 리얼하게 보여줄까도 했지만 작가님이 크게 반대했죠. 그런데 욕먹더라도, 언젠가는 정말 현실적인, 비극적 결말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유지훈 기자 tissue@enter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