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유지훈 기자] ‘인생은 롤러코스터다.’ 죽은 비유이긴 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순간 모든 일이 잘 풀리다가도, 힘든 일 역시 한꺼번에 찾아오죠.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굴곡진 인생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고 미리 올 불행에 대비도 합니다.
‘내리막’은 이 굴곡진 인생 가운데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에 초점을 맞춘 노래입니다. 버벌진트의 EP앨범 ‘페이버릿(Favorite)’ 네 번째 트랙으로 에픽하이의 미쓰라진과 타블로가 참여해 더욱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세 사람은 각각 희망을 잃은 30대 여성, 도박에 중독된 가장, 도덕성을 잃은 랩스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A는 평범한 30대 여성입니다. 스스로를 평범하지 않다고 규정짓는 것이 있다면 취업과 결혼에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참하다고 느꼈고 다른 친구들과 상황을 비교합니다. 친구들은 남편의 돈으로 안정적인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도 가졌지만 친정에게 맡겨두고 어엿한 커리어 우먼으로서 활동하고 있죠.
아버지의 “인생 빨리간다”는 쓴 소리에 A는 단장을 하고 밖으로 나갑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좋은 자극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비호감인 사람들의 환대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낭만은 없었습니다. 잡지와 영화에서 보던 삶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A는 답답한 마음을 쇼핑으로 풉니다.

B는 패 한 장에 수 천 만원의 돈이 오가는 도박장을 전전하는 가장입니다. 한 번의 대박을 위해 단두대에 올라서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고 가정은 파탄 직전까지 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 B에게 등을 지고 아이가 자수성가 하는 것만을 바랍니다. 하지만 B는 아내의 마지막 바람마저도 꺾어버립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B의 손에는 아이의 대학 등록금이 들려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를 붙잡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도박판의 시작은 좋았지만, 이내 B를 다시 한 번 벼랑 끝으로 몰아넣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모든 것이 함정이었다는 것을 알았죠. 하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B는 장기를 걸고 두 번째 도박을 시작합니다.

앞서 버벌진트와 미쓰라 진이 인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타블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랩스타 C를 관찰합니다. C는 힙합 신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높은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음악이 아닌, 명성을 팔아 이전 노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앨범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양심의 가책,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부를 상징하는 백금 목걸이를 항상 하고 다녔지만, 깊은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그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 후진국 미성년 아이들은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목걸이가 늘어날 때마다 한 명의 아이가 죽어나갔습니다.
C는 마약과 술에 절어 살았습니다. 아내는 임신했지만 C는 다른 여자를 만나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 C를 추종하는 한 여성은 그와 몸을 섞고 함께 마약을 합니다. 그리고 함께 차에 올라타죠. 여자는 과한 마약 때문에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고 급작스럽게 숨을 거둡니다.
C는 차를 몰며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합니다. 결국 차가 멈춘 곳은 다리 위였습니다. 주변 하수구에 시체를 유기하기로 결심한 것이죠.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녀가 갑자기 정신을 차려 C의 목걸이를 잡아챘고, 함께 하수구로 빨려 들어갑니다. 타블로는 담담한 어투로 “끝났다”고 말합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입니다. 이 문장처럼 세 사람 역시 모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이유는 다릅니다. 상대적 박탈감, 도박 중독,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이 모두 그들의 인생을 내리막으로 밀어냈죠.
우리 모두도 각자의 이유로 불행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리고 때때로 타인의 비극을 읽으며 해방감을 느낍니다.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을 해소하며 마음을 정화하죠. 일종의 안정 심리라고 할까요. ‘내리막’은 이어폰을 꼽고 손쉽게 읽을 수 있는 한국 힙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극’입니다.
메인뉴스 유지훈 기자 free_from@naver.com/디자인=정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