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싱글라이더] 이주영 감독이 파고드는 인간의 공허함, 그리고 살며시 건네는 안부

메인뉴스_관리자 기자 2017-02-22 00:46:36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축 쳐진 어깨에, 나약함을 가득 두른 이병헌을 스크린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싱글라이더’ 속 인물들의 세상은 차갑고, 푸르고, 회색빛이 가득하다.

액션, 오락, 범죄 등 화려하고 볼거리 가득한 충무로에서 조용하게 빛나는 보석 같은 작품의 등장이다. 차가웠던 겨울을 함께 떠나보내기에 충분한 ‘싱글라이더’는 날카롭지 않게 관객의 허한 마음으로 파고든다. 바쁘게 사는 삶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잔잔히 생각하게 만든다.

잘나가던 증권회사의 지점장이었던 강재훈(이병헌 분)은 꽤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에게는 안정적인 직장도 있었고, 번듯하게 수입을 건네줄 가족이 있었다. 비록 호주에 사는 아내 수진(공효진 분)과 아들 탓에, 기러기 아빠인 그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가족과 성공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부실채권 사건이 터지고 한 순간에 그의 삶은 무너진다.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던 재훈은 아내와 아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돌연 호주로 떠나고 그 곳에서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배우들이 직접 ‘스포금지 캠페인’에 나설 정도로, 영화 말미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은 말 그대로 파격적인 반전이 맞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오는 순간, 그 반전의 정도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반전으로까지 달려 나가는 농밀한 서사와 그 안에서 표출되는 수많은 감정과 행위들이 ‘싱글라이더’가 갖는 의미다.

무엇보다 이병헌이 선택한 시나리오로, 엄청난 화제를 모은 만큼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감성 연기도 기대를 모았다. 최근, 캐릭터성이 짙은 인물로 관객들에게 찾아왔던 그는 ‘번지점프를 하다’, ‘달콤한 인생’에 버금가는 반가운 모습으로 완벽하게 기대에 부응했다. 대사도 거의 없어, 약간의 지루함을 동반할 수 있지만 깊은 눈빛과 느릿한 걸음에서 나오는 독보적인 감성은 지루함을 지우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드문드문 등장하는 일상 속 그의 자연스러운 유머는 마냥 울적한 톤을 방어한다.

이병헌이 공효진을 관찰자 시점으로 보는 탓에, 관객들도 덩달아 수진을 관찰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진에게서 느껴지는 공허한 감정을 비롯해 그녀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온전히 전달되는 이유는 공효진의 연기 덕이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작품에 스며들었다. 또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학생 유지나를 연기한 안소희는 ‘부산행’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능숙하지는 않지만, 공효진과 이병헌 사이에서 캐릭터에 맞게 제 몫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이 작품의 매력은 배우들의 연기뿐만이 아니다. 이주영 감독의 유려한 연출이 영화를 향한 집중도를 배로 높인다. 광고 출신다운 감각적인 영상미는 물론, 귀를 예민하게 집중시키는 사운드에 공을 쓴 흔적이 여실히 느껴진다. 모든 사물들의 소리를 생생하게 잡아내고 부각시켜 캐릭터와 동일한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조영욱 음악 감독의 배경음악이 또다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배우들의 감정 상태를 오롯이 표현해 몰입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홍보 과정에서 내세웠던 호주의 아름다운 풍광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광활한 풀샷을 이용해 호주의 하늘과 건물의 조화를 앵글 안에 군더더기 없이 담아냈다. 유독 인물 단독샷보다 풍경과 인물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며 캐릭터가 가진 쓸쓸함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이주영 감독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한 번씩 문득 떠오르는, 오래 두어도 온기가 있는 영화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고, 그 바람을 이루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듯 싶다. ‘싱글라이더’는 오랜 시간동안 인물의 감정을 곱씹은 뒤에, 본인의 삶을 다시 한 번 마주할 용기를 선사해줄 작품이다. 22일 개봉.

 

이예은 기자 90090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