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선아] 굳건한 정상의 이유, ‘전지적 관객 시점’

메인뉴스_관리자 기자 2017-02-24 10:08:49
사진 : 황재원 기자 / 글 : 이예은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사진 : 황재원 기자 / 글 : 이예은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정신없이 돌아가는 무대, 화려한 조명, 그리고 온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음악 소리에도, 이 배우만 등장하면 무대의 중심이 단번에 잡힌다. 행동, 대사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며 그녀의 노래를 듣는 순간, 관객들은 흥분감에 휘감긴다. 작은 체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 배우만큼이나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닌 뮤지컬 배우가 있을까. 뮤지컬 데뷔 16년을 맞은 정선아가 이번에는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을 들고 등장했다.

작년 12월 15일부터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보디가드’는 팝의 여왕이라 불리는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 15곡으로 엮어낸 주크박스 뮤지컬로, 스토커의 위협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톱 가수 레이첼 마론과 그녀를 사랑하는 보디가드 프랭크 파머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정선아는 어렵기로 소문난 휘트니 휴스턴의 곡을 쉴 새 없이 부르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같은 배우들이 되게 부러워하더라고요. 이 작품하면서 휘트니 휴스턴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해서요. 또, 힘들텐데 체력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있어요. 제 지인이나 친한 친구들은 너무 좋아해요. 뮤지컬에 관심이 없는 지인들조차도 음악이 주는 힘 덕에 재미있게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12월에는 긴장 때문인지, 정신이 없다가 1월이 다 되어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즐기고 있단다. 항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천하의 정선아가 긴장을 할 정도니, ‘보디가드’가 만만치 않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사진=황재원 기자
사진=황재원 기자

 


“부담이 더 컸어요. 이 작품은 어떤 곡도 관객 분들이 알고 오셨을 텐데 노래 한 소절마다 부담스러워요. 하지만 왕관을 가진 자는 무게를 견디라는 말처럼 어느 정도는 무겁게 가야죠. 공연할수록 부담은 줄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제가 생각한 만큼 관객 분들이 매의 눈으로 보시는 게 아니더라고요. 연말연초에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을 마음으로 느끼고 싶으신 분들이었어요. 옛 추억을 가지고 좋은 사람과 좋은 음악을 들으러 말이죠. 그래서 제가 레이첼 마론 역에 진실 되게 빠져서 연기하면 저절로 따라와 주셨어요. 그 덕에, 저도 따뜻하게 연기할 수 있었죠.”

동일한 시기에, 디바로써의 정선아의 가치를 정확하게 증명한 ‘아이다’가 공연 중이다. 그리고 또 그녀가 최고로 잘하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0년에 처음 선보였던 ‘아이다’의 암네리스는 곧, 정선아라는 공식을 세울 정도로 그녀의 몸에 딱 맞는 옷이었다. 안정성은 기본으로 챙길 수 있고, 다시 한 번 공식을 입증할 수 있을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선아는 ‘아이다’ 대신 과감하게 ‘보디가드’를 선택했다. 대신,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춤을 추고 노래하는 인물 탓에 러닝머신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운동이며 필라테스며 온갖 체력관리에 힘을 쏟았다.

“아시아 초연이라는 점이 제일 끌렸어요. 외국 친구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도요. 음악적인 면은 말 안 해도 모든 분들이 아시겠죠? 그리고 영화 ‘보디가드’를 뮤지컬 무대 위로 옮긴다는 것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컸어요. 심지어 배우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지만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을 부른다는 건 너무 행운이잖아요. 영국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저는 이미 보고 왔어요. 관객 분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다 갖춘 것 같아요. 노래 하나로 마음이 눈 녹듯이 녹는 게 있더라고요. 이 작품을 꼭 내가 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기쁘죠.”

 

 

 

 

 

사진=황재원 기자
사진=황재원 기자

 


레이첼 마론 역에는 정선아 뿐만 아니라 첫 뮤지컬에 도전한 가수 양파와 손승연이 함께 트리플 캐스트로 나섰다. 상대 배역인 프랭크 파머에는 배우 이종혁과 박성웅이 함께 무대에 올라 호흡을 맞춘다.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팝가수 노래를 차용해서 그럴까. 독특하게도 정통 뮤지컬 배우는 오로지 정선아 혼자다. 이제껏, 수많은 작품을 해오면서 뮤지컬 무대에 뮤지컬 배우가 온전히 정선아 홀로인 것은 그녀에게도 낯선 환경이었을 터.

“조금은 외로웠어요. 항상 뮤지컬만 하는 배우들 혹은 방송 및 가수 등의 분들은 많아야 1~2명이었는데 이번에는 저만 뮤지컬 배우잖아요. 가수 분들의 장점도 있으시지만 뮤지컬을 처음 접하시는 거니까 ‘내가 어떻게 도와드려야하나? 아니면 내 것만 잘 하면 될까?’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전혀 그런 생각과는 상관없이 두 분 다 좋은 분들이었어요. 어린 승연이나 양파 언니와 함께 하면서 제가 볼 수 있는 시야도 더 넓어졌어요. 남자배우 분들도 자기 관리가 철저하셨고요. 그래서 외로움은 연습하면서 많이 사라졌어요. 대신, 제가 뮤지컬 배우니까 뮤지컬 배우 주자로써 누가 되지 않겠다고는 생각했어요. 책임감을 더 가졌죠.”

정선아는 넘치는 끼를 올곧이 뮤지컬에만 쏟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자연히 따라온 디바라는 수식어 말고도 ‘초연 전문 배우’라는 단어 역시 늘 그녀와 함께였다. ‘아이다’부터 ‘드림걸스’ ‘위키드’ ‘킹키부츠’ 등 다양한 콘셉트의 작품 캐릭터를 가장 먼저 ‘정선아화’ 시켜서 국내에 선보인 배우 중 하나다. 초연작에 선다는 것은 배우에게 ‘최초’의 의미를 남기거나 훌륭한 선례가 될 수 있으나 안정성은 보장할 수 없다. 위험한 양날의 검이다.

“저는 새로운 시도나 뭔가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해보고 싶어 하는 모험심이 있어요. 또, 어쩌다 보니까 외국에서 인상 깊게 보고 우리나라에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싶었던 것들이 ‘위키드’나 ‘킹키부츠’였어요. 특히 ‘위키드’는 외국 친구들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 언제 저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제가 초연 멤버로써 함께 하게 되었죠. 초연 작품이 외국에서는 검증이 됐지만 한국에서는 어떻게 관객 분들이 보실지 모르는 상태잖아요. 첫 공연을 올릴 때 미묘한 떨림이 초연을 찾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잭팟’이 터질지 혹은 한국에서만 관객들이 좋아하시지 않을지에 대한 긴장감과 기대를 즐기는 편이에요.”

 

 

 

 

사진=황재원 기자
사진=황재원 기자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밝은 웃음에, ‘보디가드’ 첫 공연 도중 미끄러진 실수를 그 자리에서 몸소 재연까지 선보이는 정선아에게서 유쾌한 에너지를 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가진 본연의 아우라가 워낙 강해서인지,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제가 세보이나요?(웃음) 많은 분들이 저를 처음 보시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신도 없고 뭔가 챙겨주고 싶고 유쾌하다’ 고 하세요. 저 자신은 되게 사랑이 많은 스타일 같아요. 불쌍한 거 보면 울기도 하는 그런 반전이 있어요. 사실 이렇게 무대 위에서 사랑스러움을 드러낼 수 있는 건, 관객 분들의 에너지를 받아서예요.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사랑을 못 받으면 정말 속상하거든요. 저는 항상 사랑에 목말라있어요. ‘저 배우 잘한다’ 보다는 ‘저 배우 역할에 잘 맞게 잘 한다’라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요. 제가 이입을 할 수 있게 캐릭터와 하나가 되면 관객 분들이 그렇게 봐주시더라고요. 저는 관객 분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 희열을 느껴요. 그걸로 다음 무대의 에너지를 얻기도 해요.”

“지금 받는 사랑을 계속 누리고 싶어요. 제가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 간에 간혹 관객 분들이 무대와 사랑에 빠지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나의 일은 다 하였노라’ 하면서 스스로 칭찬해요. 사랑이라는 게 남녀 간의 사랑도 사랑이고, 가족 그리고 친구 간의 사랑도 있지만 관객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중요해요. 제가 말한 거지만 되게 멋있네요.(웃음) 말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제가 받은 이 사랑을 같이 나누는 게 더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이예은 기자 90090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