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어느새 뮤지컬 관람을 고려하는 국내 관객들은 그 작품이 어떠한 가치를 지녔냐만 보지 않는다. 이제 '어느 캐스트가 어느 날짜에 등장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고민이 가능한 이유는 한 명의 배우만이 하나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더블’(두 명의 배우가 하나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 및 ‘트리플’ (세 명의 배우가 하나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 캐스팅이라고 칭한다. 더 나아가 ‘쿼드러플’(네 명의 배우가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도 존재한다. 이는 주연 역할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극 중에서 분량이 크게 많지 않은 조연으로까지 확장되는 경우가 파다하다.
분명히 앙상블 내에 언더스터디, 스윙 등의 커버 배우들을 선정함에도 불구하고 원캐스트가 아닌 더블과 트리플 캐스팅이 당연해 보인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시장에서만 유독 이용되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뮤지컬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힘들다. 장기간 공연을 한 명의 배우가 맡아 이끌어가는 게 일반적이며 즉, 원캐스트가 사실 뮤지컬의 오리지널 체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캐스팅에 따른 홍보 효과 및 예매율 차이 탓에, 원캐스트는 하나의 큰 모험 혹은 파격적인 시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국내 흐름에 대해 대형 제작사 중 하나인 신시컴퍼니 관계자(박지현)는 “해외 공연에서는 커버나 언더 스터디의 배우가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연 시장에서는 관객들이 작품을 선택할 때 캐스팅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커버나 언더 스터디의 배우들이 본 공연 무대에 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일례로, 2011년 창작뮤지컬로 막을 올렸던 ‘천국의 눈물’에는 김준수와 전동석, 그리고 정상윤이 주인공 준의 역할로 트리플 캐스팅되었다. 당시, 작품 자체의 허술함으로 많은 관객의 외면을 받아 그 타격은 고스란히 전동석과 정상윤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김준수의 회차만큼은 공연장을 가득 메워 그의 티켓파워를 실감케 했다. 1차 예매에는 5분만에, 2차 예매는 3분 30초만에 매진시킨데 이어 3차 예매분까지 2분 30초만에 매진시켰다. 심지어 고가의 암표까지 거래되었던 사태가 연달아 발생했다. 그러나 전동석과 정상윤의 상황은 달랐다.
최근까지도 불균형적인 흐름은 이어져오고 있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 26일까지 막을 올렸던 ‘팬텀’은 ‘오페라의 유령’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다뤄, 캐릭터와 넘버 자체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초연에 이어 박효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2016년 뮤지컬 랭킹 1위(인터파크 기준)의 영예를 누렸다. 함께 캐스트에 이름을 올린 뮤지컬 배우는 박은태와 전동석으로, 뮤지컬 시장에서 나름의 튼튼한 팬덤을 지니고 훌륭한 실력 덕에 뮤지컬 관객들의 호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공연 관람이 힘들 정도로 전석 매진에 가까웠던 박효신의 출연 회차와는 달리, 두 배우의 회차에는 많은 좌석들이 공석으로, 현저한 차이를 보이며 아쉬움을 자아냈다. 스타 마케팅의 필연적인 이유를 증명한 셈이었다.

‘데스노트’, ‘드라큘라’, ‘도리안 그레이’ 등을 제작한 씨제스 컬쳐의 연출 관계자역시 “제작의 관점에서 원캐스트 시스템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구조는 맞다. 하지만 더블과 트리플 캐스팅이 주는 매력도 분명 있다. 작품에 따라 배우 각자의 매력이 발휘되고, 그게 또 작품을 보는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순발력 있고, 색다른 조합을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라이브 공연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한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더블 및 트리플 캐스팅에 대한 긍정적 생각을 내비쳤다.
이어 “물론 초연 작품의 경우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더블, 트리플 캐스팅은 혼란과 긴 작업시간을 요하는 어려운 구조라 원캐스트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물론, 제작사의 입장도 당위성을 띤다. 잘 알려진 배우들을 기용함으로써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 더불어 관객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캐릭터를, 여러 배우들의 해석 덕에 느끼는 다양한 매력이 존재할 터다. 그리고 잘나가는 배우들을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이 아닌 무대 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니 그 역시 하나의 재미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그 탓에, 배우들의 집중력은 분산되기 마련이다. 많은 캐스트들이 함께 연습을 소화하기란 무리라 계속해서 일정이 쪼개지니 배우들도 100%의 몰입을 끌어낼 수 없다. 또한, 무대 위에서 호흡을 맞추는 상대가 매일 달라지고 각각의 배우들이 해석한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빠르게 몰입해 장단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이뿐 만이 아니다. 수익과 마케팅 부분을 위해 정통 뮤지컬 배우만을 기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 스타나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을 캐스팅하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바뀐 스케줄에 연습은 뒷전인 경우도 차고 넘친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작품의 수준은 완벽에 가깝지 못하고 관객은 그 완벽을 마주할 수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존재하는 커버 배우들은 사실 기존의 관행을 겉으로 이어오는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거의 0%에 수렴하는 커버 배우들의 무대 등장은 그들의 역량이 강화되고, 더 나은 ‘배우풀’을 형성하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일각에서는 제대로 된 역량을 지닌 배우층이 얇기 때문에 실력이나 인지도가 보장된 배우들을 한꺼번에 쓸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오히려 얇은 배우층을 더 얇게 파고들 우려가 크며 뮤지컬 시장의 정체성을 희미하게만 만들 뿐이다. 수익을 내기에 급급하다면, 뮤지컬 작품의 질적 성장과 많은 배우들을 동일하게 높은 실력으로 끌어올리기는 것은 장기적 난제로 이어질 것이다.
‘데스노트’, ‘도리안 그레이’ 등 여러 작품을 원캐스트로 고집하며 커버 배우들을 무대에 등장시키며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씨제스 컬쳐는 “‘데스노트’는 타 공연에 비해 공연기간이 짧은 편으로, 그 일정을 감안했을 때 한정된 기간 동안 완성도 높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일본 원작 공연 또한 라이토 배역만 더블 캐스팅으로 진행한 걸 제외하고는 나머지 배역은 모두 공연했다. 그래서 한국 초연 준비 시 원캐스트가 좋고, 더블 캐스트로 가야한다면 공연 페어를 픽스해서 늘 같은 배우들의 조합으로 공연을 선보일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이 일본 측에서 있었다. 그러다가 저희도 모든 배역을 원캐스트로 진행해보자는 욕심과 목표가 생겼고, 다행히 전 배우들이 원캐스트로 모든 공연을 잘 해내주었다”고 설명했다.
이예은 기자 90090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