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정민①] 끊임없이 자신을 변주하는 이 남자, 겸손과 긴장으로부터 비롯되다

기자 2017-03-09 15:22:53


[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배우 박정민은 끊임없이 변화를 갈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작품마다 매번 다른 얼굴을 비추는 그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신이 나게 만든다.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다. 자유자재로 스크린 속을 뛰어다니는 그가 이번엔 세련된 갤러리의 대표로 변신했다.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어느 날 눈을 뜨니 세상을 발칵 뒤집은 아티스트로 탄생한 지젤(류현경 분)과 또 다른 아티스트 재범(박정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독특하고 통통 튀는 연출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첫 연출을 맡은 김경원 감독의 신선한 기운은 박정민과 류현경을 통해 그대로 흘러나온다.

재범은 진짜 예술적인 그림을 발견하여 성공을 이루고 싶은 아티스트로, 운명처럼 지젤이라는 여자와 그녀의 작품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녀를 세기의 아티스트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세상과의 타협, 성공을 향한 집착 등 다양한 면모를 선보인다. 재범의 매력은 박정민의 연기 덕에 배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는 스크린을 통해 확인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주눅이 들었다며 의외의 대답을 전했다.

“저는 제가 나온 걸 처음에 보면 많이 속상해요. 그래서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몇 번은 더 봐야지 전체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연기의 실수들도 보여서 주눅이든 상태예요. 저는 늘 그래요. 남들은 잘 모르는 실수도 제 눈에는 너무 잘 보이거든요. 아직 초짜라서 전체를 보는 그림이 부족한 것 같아요.”

 


고민에 함께 공감하고 응원을 보내고 싶을 정도로 겸손한 그가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극중 재범이 하는 고민이 자신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 물론, ‘동주’ 촬영이 끝나고 3일 후에 크랭크인이기 때문에 물리적 준비 시간의 부족으로 출연 결정을 고민하긴 했다. 더불어 미술 쪽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고. 하지만 김경원 감독의 정확하고 의욕적인 설득에 넘어갔다고 말하는 그에게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필연적으로 등장한 작품이다.

“제가 이 영화를 찍던 해의 초에 하던 고민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넓게 봤을 때는 극중 캐릭터처럼 미술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제가 하는 영화의 일도 그렇고, 더 넓게는 우리 모두가 선택이라는 걸 하는 것에 있어서 겪는 갈등들을 그려냈잖아요. 내 소신과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이나 사소한 선택 혹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선택들까지 말이에요. 이 영화는 이러한 고민들을 극적으로 표현했고, 제가 이 영화를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에 대한 재미가 있었어요.”

박정민은 스크린에서 종횡무진하고 있지만, 브라운관에서도 얼굴을 조금씩 비추고 있고 얼마 전엔 연극을 통해 무대 위에도 올라섰다. 그리고 그는 산문집까지 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예술가’란 칭호가 마냥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극중 갤러리 대표 역으로 열연했던 박정민이지만 류현경의 역할이었던 화가 지젤에게도 큰 공감을 느끼고 자신의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사실 지젤한테 많이 이입이 됐어요. 선택을 받아야 작품을 세상에 공개 할 수 있는 화가 캐릭터잖아요. 저 역시 연기하고 싶어서 과까지 옮겨서 시작했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데뷔까지 했는데 점점 할수록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저 자신도 놀랐고 화가 많이 났어요. 연기만 할 수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지젤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동의해요. 그래서 지젤도 자꾸 소신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하잖아요. 저도 그런 과정인 것 같아요. 제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지 않고, 멀리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좋은 장면도 하나 있어요. (극중) 지젤이 계약서에 싸인하고 좋아하지 않잖아요. 드디어 자기의 그림을 세상에 보일 수 있는데 불안해하죠. 그것은 뭔가 자기 생각대로 안 되어가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감일 거예요. 저는 그 장면에서 현경이 누나가 잘 연기를 해주셔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박정민은 인터뷰 내내 상대역이었던 류현경의 연기를 연이어 칭찬했다. 많은 대중들이 알고 있다시피, 두 배우는 스크린 밖에서도 깊은 친분을 유지 중이다. 영화 ‘오피스’에서도 함께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았고 예능에도 동반 출연하면서 끈끈한 우정을 자랑했다. 박정민뿐만 아니라, 류현경 배우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신뢰와 친밀함은 연기의 맛을 한층 더 살렸다.

“사실은 제가 심한 장난을 치면 안 되는 경력이 오래된 선배님이시죠. 그런데 확실히 누나가 저를 되게 많이 다 받아주셨어요. 제가 이상한 짓을 해도 다 받아주세요. 감독님도 계속 열어주시고 누나도 받아주시고 하니까 되게 신나는 현장이었죠. 그래서 여러 가지를 다 보여드렸어요. 편집됐지만요.(웃음) 그리고 누나뿐만 아니라 저는 연기할 때 감독님의 말씀을 죽이 되었든 밥이 되었든 신뢰하고 가는 편이에요. 이 영화에 대해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은 감독님이잖아요. 거기에 제 아이디어를 더해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저는 감으로 연기하는 스타일이라 본능적으로 나온 게 아니에요. 사실 집에서 다 준비해갔어요.”

이 작품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요소가 있다. 뮤지컬 무대 위에서 날아다니며 인정받는 배우 문종원이 박정민 옆에서 생기를 살린다. 특유의 웅장한 발성과 매력적인 연기는 스크린 앞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극 속에서도 박정민과 주고받는 호흡은 발랄하기까지 해 노련함, 그 자체였다.

“처음에 (문)종원이 형을 보고 되게 이국적으로 생기셨다고 생각했어요. 키도 크고 목소리도 엄청 멋있으셨거든요. 사실 처음에 리딩을 해보고 큰일났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잘하시고 재미있는데 약간 나랑은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초반에는 어떡하지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맞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 촬영을 하고 하면서 그 걱정은 기우인 걸 알았어요. 워낙에 베테랑이시고 무대에서는 스타이실뿐더러, ‘노트르담 드 파리의’에서 콰지모도나 ‘레미제라블’의 자베르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저나 잘하면 될 걸 괜히 이상한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형도 제가 이상한 거 하면 다 받아주셨어요. 제가 문제였나봐요.(웃음)”

류현경, 문종원과 탁월한 호흡을 보였던 박정민에 더해져, 극의 무게가 단번에 잡히는 순간이 있다. 배우 이순재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는 대한민국 대표 아티스트 박중식 역으로 특별출연해, 후배들의 연기 흐름에 힘을 강하게 불어넣는다. 연기계의 바이블이라고 꼽히는 그와 호흡을 맞춘 박정민은 갑자기 자세까지 바로 잡아가며 긴장한 모습을 보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되게 많이 긴장되고 떨렸어요. 2015년 중 가장 긴장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말로 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요?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저 너무 좋았어요. 선생님과 호흡 맞추고 연기하는 순간들이요. 전날 잠도 못 자고 현장에 갔는데 이순재 선생님을 제외하고 모든 분들이 다 저처럼 그러시고 계시더라고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계셨어요. 왜 저 때는 안 그러셨죠?(웃음) 모든 스태프 분들이 긴장하고 감동했던 순간들이에요. 선생님과 함께 하는 회차가 많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를 향해 관객들이 집중했으면 지점이 있긴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고 일관했다. 관객에게 보는 자유를 드리고 싶어서라고. 그는 관객의 시선과 판단까지 배려하고 열어놓는 유려한 배우였다.

“제가 연기를 잘해서 작품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대중에게 잘 전달이 된다면 대중들이 그 모습의 저를 좋아해주시면 좋겠어요. 저의 다른 모습이 아니라 그 모습을 보고요. 저도 항상 고민해요. 선배님이 걸어가셨던 길을 저는 잘 뒤따라가는 게 맞겠다고 생각해요. 정답은 아니죠. 세월이 많이 지나고 시스템이 달라졌으니까요. 어쩌면 타박 받을 일이기도 한데 저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이예은 기자 90090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