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에서 갤러리 대표 아티스트 재범으로 분한 박정민에게 많은 사람들이 거는 기대감은 무척이나 컸다. 2017년 스크린에 처음 선보이는 그의 개성 넘치는 연기에 귀추가 주목됐다.
그 이유야 간단했다. ‘충무로에 등장한 신성’ ‘충무로의 기대주’ ‘충무로의 보석’ 등 박정민이 이준익 감독의 ‘동주’의 송몽규를 연기한 직후, 그의 앞에 붙은 수식어들이다. 앞서 ‘파수꾼’으로 이미 제대로 눈도장을 찍고 기대감을 자아내더니 ‘동주’로 결국 ‘포텐’(잠재력)을 제대로 터뜨려내며 그가 지닌 배우로써의 자질과 감성을 제대로 표출했다. 청룡영화상의 신인남우상까지 거머쥔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당연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박정민은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옛날에도 그런 말을 가끔씩 들었거든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결과는 없었고, 그런 단어들이 저한테 붙는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저는 그것에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너무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에요. 모든 케이스가 그렇지 않지만 다음이 불안정하잖아요. 작품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거라서 그 말에 갇혀버리면 아주 조금이나마 안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말일 뿐이고, 감사한 마음만 가지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소신과 신념을 지키려다가 결국 현실 앞에서 굴복하거나 혹은 꿋꿋하게 버텨낸다. 계속해서 갈등하고 타협하는 그 모든 과정을 이 영화에서는 유쾌하게, 어쩌면 극단적으로까지 그려냈다. 박정민에게는 그 캐릭터들이 마냥 스크린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현실 속 세상 사람들의 모습에서 분명히 비치는 모습이며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게 곧, 박정민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였을 테다.

“저 역시 늘 소신과 싸워요. 특히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은 인지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죠. 저 역시 그랬고요. 많은 사람들한테 나의 연기를 보여주려면 필요한 게 있잖아요. 마음 아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요. 하지만 돌이켜보니까 그런 것들은 찾아간다고 해서 와주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 것들은 부수적이고, 내가 할 일을 잘 하고 운이 좋으면 결국 따라오는 것들이에요. 저는 오히려 타협을 잘 안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해요. 부모님도, 제 친구들도, 회사 식구들도 그렇고 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분들은 저에게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제가 그것을 잘 안 들어요.(웃음) 그래서 데뷔 초반에는 그들을 설득하느라 조금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 분들이 저의 소신을 믿어줬고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그 때만큼 주변 사람들하고 언쟁을 벌이지는 않아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배우라고 생각을 하셔서인지 뿌듯해 하세요. 저는 어차피 계속 힘들 거예요.”
입맛대로 주무르듯 연기하는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등장은 사실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대중에게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알리기 전, 그는 독립영화계에서 종횡무진하던 베테랑 배우였다. 그 경험과 내공이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이제는 남부럽지 않을 인기와 인정을 받은 그이지만 여전히 저예산영화를 향한 그리움과 갈증이 공존했다. 하지만 이제 찾아주지도 않는다며 울상을 지어 웃음을 유발했다.
“그런 게 참 재미있어요. 웅장하게 카메라와 조명이 가득하고, 다 큰 성인들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려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 귀엽고 재미있어요. 되게 순수한 사람 같거든요. 그런 현장에 제가 딱 들어가 있으면 정말 즐거워요. 제가 했던 다수의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의 현장들이 대부분 그랬어요. 그리고 이 장르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즐거우니까 저는 또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는 잘 안 불러주시더라고요.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아직도 저한테는 그 현장들이 고향 같이 느껴져요.”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박정민은 스크린, 브라운관뿐만 아니라 무대 위로까지 직접 올라갔다. 최근,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문근영과 호흡을 맞추며 호평을 얻어냈다. 하지만 연극과 영화는 장르적으로 극명한 차이를 띄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스크린에서 탄탄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이더라도 무대 위로 가면 대다수가 혼란에 빠진다. 박정민에게도 녹록치 않은 기간이었다.
“제가 초짜라는 게 그런 데에서 나타나요. 저는 아직도 영화 덕분에 칭찬 받을 때 ‘어우 다행이다. 내 실수 잘 숨겼다’는 느낌으로 살아요.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인데, 연극에서 다 공개됐어요. 무대에서는 숨을 곳도 없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무대 첫 회차 때 ‘무대 언어를 모르는 배우’, 일명 ‘뽀록’이 난 거예요. 영화에서는 쉬운 예로, 슬프면 눈물 한 방울 흘리면 카메라로 잡아주시잖아요. 근데 저는 무대 위에서도 그랬어요. 그러면 안 보이잖아요. 저는 이것에 적응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창피해서 불편했어요. 그래서 계속 고개 숙이게 됐어요. 정작 관객들은 그렇게 안 받아들이시는데 말이에요. 선배님들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조금 알겠다 싶을 때 끝나버렸어요. 다음 연극 때는 더 잘 할 거예요. 그런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감정의 폭도 너무 깊고 커서 힘들었어요. 그 작품은 하지 않을 거예요.(웃음)”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을 보였던 박정민은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진중했고 치열했다. 자신이 지닌 명확한 연기 신념이 있었고, 표현에 있어서 거침이 없었다. 그 태도가 지금의 박정민을 만들었고 이후 더 멀리, 더 단단하게 성장할 박정민을 기대케 만든다.
“저는 선택을 하는 위치가 아니에요. 쓰임을 받아야 하는 위치죠. 무언가를 선택해본 적은 없어요. 나름의 기준은 있죠. 최근에 공연하면서 생각했던 기준은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예요. 그게 정확하면 배역이 작든 크든 끌려요. 소실점이 확실하면 돌아가도 되고 직진으로 가도 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볼 수도 있는데 그런 것 없이 그냥 지평선이면 시선을 둘 데도 없어요. 그냥 힘들더라고요. 그럴 때는 뭘 준비해야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부족해서 그러겠지만 제 입장에서 이 인물이 하려는 이야기가 모호하면 자꾸 부수적인 것을 고민하게 돼요. ‘어떻게 웃기지, 어떻게 자꾸 대사를 맛깔나게 치지’ 이런 것들이요. 그것은 근데 사실 나중 문제에요. 목적이 확실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요.”
이예은 기자 90090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