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세계’를 연주하던 정현수의 프러포즈

기자 2017-03-10 11:42:25
디자인=정소정
디자인=정소정


[메인뉴스 유지훈 기자]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배신자가 누군지 찾기 위해 조직원들이 고군분투한다. 관객들은 배신자의 입장에서 숨죽이고 이를 지켜본다. 선혈이 낭자하는 치열한 남자들의 세계,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선율이 깔린다. 영화음악감독 정현수가 만든 ‘신세계’의 음악들은 오묘한 조화를 이뤄, 우리에게 크게 각인됐다.

정현수는 최근 솔로앨범 ‘더 컬러 오브 러브(The Color Of Love)’를 발매했다. 영화음악과 현대음악, 전자음악 작곡가로 활동하며 20여 편의 영화를 통해 작곡한 음악을 들려주던 그의 첫 앨범이다. 스트링과 피아노 선율을 통해 들려주는 아름다운 신곡들과 새롭게 편곡된 영화 ‘신세계’ 메인테마, ‘변호인’ 엔딩테마 등이 수록됐다.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 ‘더 컬러 오브 러브’에는 특별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정현수는 과거 사랑했던 한 여자를 위해 이 노래를 만들어 프러포즈했다. 유학은 준비하던 그는 결국 마음을 다잡았고, 지금은 정현수의 아내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연주곡을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Q. 영화음악감독이 솔로 앨범을 내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작곡가로서 드러내고 싶은 욕심을 많이 자재하고 있었어요. 멜로디나 타악기가 들어가면 영화와 조화롭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음악이 관객들을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지 못하고 방해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게 영화음악감독의 일이니까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제가 정말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했죠.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갈망을 풀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신세계’ 메인테마는 아는 데 누가 쓴지는 모르잖아요? 창작자의 욕심으로서 저를 알리고 싶어요.”

Q. 정현수를 알리는 앨범, ‘더 컬러 오브 러브’에 대해 소개해달라.

“사랑을 하고 계시거나 사랑을 하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작곡가가 쓴 프러포즈 음악은 무엇일까에 궁금하다면 들어보셨으면 해요. 타이틀곡 ‘더 컬러 오브 러브’가 그런 노래거든요. 그리고 ‘변호인’이나 ‘신세계’ ‘돌연변이’를 재밌게 보셨던 분이라면, 그 OST들이 독립된 음악으로서는 어떤 느낌일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또 평소에 피아노나 스트링 음악을 종 하신 분이라면 좋아하실 겁니다.”

Q. ‘신세계’와 ‘변호인’의 음악으로 인기를 얻었다.

“영화음악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저도 영화를 20~30편 했는데 멜로디가 기억 남는 영화는 ‘신세계’나 ‘변호인’ 정도인 거 같아요. 영화음악이 멜로디가 기억에 남는다고 마냥 좋다고 생각은 안 해요. 음악이 녹아들어야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니까요.”

 

 

 


Q. 어떤 작품을 보며 영화음악감독의 꿈을 키웠는가.

“디즈니 음악을 좋아했었어요. ‘신데렐라’ OST를 들으며 저런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했죠. 오케스트라 음악, 관현악 음악이 좋아서 열심히 찾아봤고, 예전으로 치면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사람들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고전음악 공부를 해야 되는구나 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지금은 영화음악감독이자 교수가 됐습니다.”

Q. ‘신데렐라’를 들으며 꿈을 키웠지만, 남성적인 영화의 음악을 많이 만들었다.

“요즘에는 영화에서 피가 안 나면 이상할 정도잖아요?(웃음) 그래서 남성성이 짙은 영화에 작업을 많이 했었어요. 대신 남성적인 영화라고 해서 센 타악기를 넣진 않아요. 오히려 반대로 풀어 보려고 노력했어요. 예쁜 선율이 무자비함과 대조가 되어서 더 살아나는 식으로요.”

Q. 처음으로 만든 영화음악 ‘박야행’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것 같다.

“일단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첫 작품이니까 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가는 것도 신기했어요. 그걸 보면서 울고 웃고…. 그 때는 제 돈 내고 영화관도 열심히 다녔고, 친구들한테 표까지 사주면서 데리고 다녔죠. 열 번도 넘게 봤어요. ‘이끼’까지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안 그래요.(웃음)”

 

 

 


Q. ‘돌연변이’와 ‘군도’의 작업 방식은 어땠나

“‘돌연변이’는 아코디언 같은 악기들이 전곡에 걸쳐서 나오게 했어요. 악기를 콘셉트로 잡은 거죠. ‘군도’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스타일에 초점을 맞췄어요. 서부 영화의 느낌이 날 수 있도록. ‘베를린’은 강한 액션이 있는 스파이물이다보니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나 전자음악을 같이 넣어봤어요.

Q. ‘4등’은 수중신이 많다. 음악감독으로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정지우 감독님이 연출을 잘 하시기로 유명한 분이라 같이 해보려는 욕심이 있었어요. 수중 신이 많다보니 기존이랑은 좀 다르게 접근했죠. 뜬금없이 수영하고 있는데 멜로디가 나오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전자음향으로 우주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물속에 있는 건 우주 같은 느낌이잖아요. 붕 떠있는 듯 한 공간감이요. 수영장 떠있는 레일을 손으로 잡는 장면을 마치 외계인과 조우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Q. 한국에서는 연주곡이 사랑받는 경우가 드물다. 그럼에도 연주곡으로 가득 채운 이유는 무엇인가.

“대중음악, 가요와 영화음악이랑은 분야가 달라요. 제가 가요를 잘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서, 잘하는 거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또 사랑해주는 분들은 또 이걸 좋아하고, 소수긴 하지만 존재하니까요.”

Q. 그 말에선 영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느껴진다.

“‘신세계’ 음악을 들으면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감정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잖아요. 영화는 종합 예술이에요. 각 분야의 예술이 뭉쳐서 하나의 완성작이 나오는데, 음악이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큰 역할을 하는 거죠. 영상을 보고 울고 웃고 하지만, 음악도 그렇잖아요. 그게 영화음악의 매력이라고 봐요.”

Q. 다음 솔로 앨범에 대한 계획도 있는가

“천천히 생각해볼 거 같아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것 외에, 다른 영화에서 작업했던 것들도 있고 이미 만들어 놓은 좋은 멜로디가 있어요. 다음에는 순수음악이나 전자음악 쪽으로 할 수 있고, 그 음악들이 포함된 영화 음악들을 묶어 앨범을 내고 싶어요. 예를 들면 ‘부당거래’나 ‘베를린’이요.”

메인뉴스 유지훈 기자 free_fro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