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구조상으로 보면, 그간 대중이 흔하게 접해오던 전형적인 코미디 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강예원과 한채아라는 두 여성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섰다는 점과 현실과 동떨어진 대형 액션 코미디물이 아닌, 현실 속 흔한 소재를 차용해 우스꽝스럽게 풀어낸 코미디 영화라는 점이다. 남성 배우로는 지겹도록 봐왔던 코미디 장르의 클리셰를, 여성 배우가 키를 잡고 펼쳐내니 신선함에 재미까지 가미됐다.
비정규직 15년차이자 자격증만 22개인 어마어마한 스펙 소유자 장영실(강예원 분)은 그녀의 이력에 쌓아올려진 것들과는 다르게 매번 꿈에 그리던 정규직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그 탓에, 택시 운전을 비롯해 용접 등 안 해본 직업이 없을 정도. 그러다가 운 좋게 35살이란 나이에 국가안보국 계약직으로 취업하지만 그마저도 흔히 말하는 ‘댓글 알바’로, 재계약에 실패하며 정리해고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한 와중에, 다시 한 번 뜻밖의 기회를 얻는다. 국가안보국 차장(조재윤 분)이 보이스피싱에 걸리게 되면서 빼앗긴 돈을 다시 찾아오라는 임무를 받게 된다. 이후 보이스피싱 업체에 직접 들어가게 되면서 형사 나정안(한채아 분)과 만나고 그녀와 계속해서 엮이면서 좌충우돌 스토리가 전개된다.

모래알 같은 세상에서 이름 하나 기억해주길 바라는 장영실의 애환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많은 사람들은, 인간으로써의 가치를 인정받기 보다는 도구로써 ‘취급’되는 게 현 사회의 주소다.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관객들을 위로하기 위해 국가의 최고 기관들이 보이스피싱에 당한다든지, 어리숙한 고위직들의 모습 등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을 배치해 세태를 꼬집는다. 장르적 힘을 톡톡히 발휘한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바라보면 마냥 어처구니없는 일도 아닐 테다.
한채아와 강예원이 뽐내는 ‘케미’ 속 현저한 온도차가 이 작품의 재미를 배로 살린다. 흔히 말하는 ‘걸크러쉬’를 한채아는 쉴 새 없이 극중에서 뽐낸다. 기존 영화 속에서 그려진 연약성 짙은 여성 캐릭터와 달리, 시종일관 욕을 내뱉고, 액션에는 망설임이 없으며 영실을 향한 츤데레(?)적인 면모까지 선보인다.
이에 반해, 강예원은 뽀글머리에 빈티지스러운 옷의 착장은 그녀가 펼치는 소심한 장영실 캐릭터 구현에 힘을 실었다. 전혀 상반된 두 인물이 그려내는 버디무비는 흥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별출연한 남궁민도 제 몫을 말끔하게 해냈다. 브라운관에서의 악랄한 모습과 달콤한 미소를 스크린으로 옮겨와 가감 없이 선보였다. 더불어, 조재윤과 김민교의 연극을 연상케 하는 연기는 극을 맛깔스럽게 살린다.
‘비정규직 특수요원’을 다 보고 나면, 마치 영화 ‘럭키’를 본 듯한 느낌이다. 기대치도 않았던 작품에게서 큰 재미를 느끼고 희망을 기대하게 되는 건, 꽤나 매력적인 일이다. 철저하게 남성 배우 중심의 작품이 주가 되어 돌아가는 국내 영화계에서 ‘비정규직 특수요원’이 내보인 재미는 기분 좋은 뜻밖의 신호다.

단순히 여성 캐릭터가 투톱으로 나서서만이 아니다. 두 캐릭터는 소모적이거나 남성 캐릭터에 휘둘리는 성향에서 벗어나 오히려 주체성을 지니며, 등장하는 남성 인물들을 모두 가지고 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중 가장 소극적인 영실 역시 자신을 이용만 하던 인물을 향해 통쾌한 복수를 날린다.
후반에서 약간 루즈해지고, 11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아쉬움을 자아내지만 대단한 자본과 엄청난 플롯의 이야기를 내세우지 않아도 두 국내 여성 배우도 코미디 영화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린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16일 개봉 예정이다.
이예은 기자 90090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