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中출신 배우’ 양범, 한국인을 연기하다

기자 2017-03-20 10:29:53
디자인=정소정
디자인=정소정


[메인뉴스 유지훈 기자] 영원할 것만 같았던 중국에서의 한류열풍은 2017년부터 주춤하는 모양새다. 한국 여행 패키지는 전면 금지됐고, 대륙을 타겟으로 기획된 방송 프로그램도 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중합작을 쏟아내던 영화계도 어수선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명의 배우가 있다.

양범은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다. 중국 산동성(山?省) 지박시(淄博市)에서 태어나 한국 영화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던 그는 성인이 되어 중국 대학이 아닌 한국의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진학, 졸업했다. 장동건, 장백지 주연의 ‘위험한 관계’를 시작으로 ‘분신사바2’ ‘제3의 사랑’ ‘폴라로이드’ ‘인천상륙작전’ 등 다양한 한중합작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했다.

많은 한중합작영화에 출연했던 만큼, 양범은 인터뷰에 임할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이날도 그랬다. 그리고 사려 깊은 말을 뱉었다. “양범이라는 중국 출신의 배우가 한국어로 연기할 수 있듯, 두 나라가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Q. 한국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언제 가지게 되었는가

“어렸을 때부터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봤어요. 하정우, 황정민 선배 영화를 많이 봤죠. 연기력이 좋으신 분들이라 한국에서 배우가 되어 만나보고 싶었어요. 제가 큰 역할을 맡아서 하지 않더라도 괜찮았어요. 작은 역할이더라도 같이 호흡해보고 싶었어요. 이정재 선배, 장동건 선배랑 같이 영화를 찍었는데 역시 ‘와’라는 감탄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Q.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해 연기를 배우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 한국에 경제학을 공부하려고 왔었어요. 어학당을 다니며 한국어 공부를 했고, 시험을 쳤죠. 하지만 떨어졌어요.(웃음) 모든 걸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한 친구가 ‘외국인 전형으로 배우를 뽑는 학교가 있더라’라고 하는 거예요. 가족들 몰래 지원했고 붙었죠. 아직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던 순간이 생각나요. 아버지에게 ‘경영학과가 아니라 연극영화과에 붙었다’고 하니까 1분 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사랑하는 아들이, 그렇게 반대했던 연기자가 되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아셨던 순간이니까요.”

Q. 한국 학생들과 함께 연기를 배우는 것은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다.

“‘바람소리’라는 중국 영화가 있어요. 함께 학교를 다닌 중국 출신 친구들과 그 영화를 보며 연극 시나리오로 만들었죠. 교수님부터 동기, 선후배들이 신기하게 받아들였어요. 공연 티켓은 하루 만에 매진됐죠. 중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중국어로 연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이했나봐요. 자막을 띄워가며 연기를 했어요. 한국에서 중국 출신 배우지망생들이 모국어로 연기한다는 건 정말 뿌듯했어요. 물론 많은 분들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Q. 그 무대에 함께 올랐던 배우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가

“차오루가 학교 후배에요. 같이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들었죠. 성실하고 정말 재밌는 친구예요.(웃음) ‘바람소리’ 전에 ‘사랑한다면’이라는 작품을 했었어요. 그러고 보니 두 개나 했네요.”

Q. 장동건 주연의 ‘위험한 관계’로 데뷔했다. 한국의 신인 배우에게도 쉽사리 오지 않는 기회다.

“정식 캐스팅은 아니었어요. 저는 사실 장동건 선배의 통역으로 들어간 거였거든요. 현장에서 어시스턴트 일도 열심히 도왔고, 나중에 어떤 역할이 필요하다보니 감독님과 동건 선배가 저를 써주셨죠. 그 후로 안병기 감독님을 알게 됐고 ‘분신사바’에도 출연하게 됐어요. 문이 열리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국인인데 한국에 와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엑스트라, 통역, 어시스트,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Q. 한국어를 잘하지만, 한국어로 연기를 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일 것 같다.

“대본이 있으면 미리 받고 연습하고 할 수 있는데, 막상 즉흥연기를 하게 되는 순간도 있어요. 그럴 때는 제가 대응하기 좀 어려워요. 그리고 7년간 한국에 있었지만, 유년기를 보냈던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문화를 알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어요. 식사 예절도 그렇고, 두터운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이 어떤식으로 대화하는지도 사실 중국과 다르거든요. 그런 미묘한 부분들이 가장 큰 어려움인 거 같아요.”

Q. ‘폴라로이드’는 첫 주연작이지만 성적이 좋지 못했다.

“정말 아쉬운게 많았던 작품이에요.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서 흥분 됐었어요. 준비하면서 느낀 건 ‘난 아
직 준비가 안 됐다’였어요. 역할을 분석하는 것, 생각하는 것과 연기는 다른 거더라고요. 많은 설정을 준비했는데 연기할 때는 뜻때로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촬영하면서 아쉬웠어요. 시사회 때 ‘폴라로이드’에서 연기하는 저를 처음으로 봤어요. 그런데 너무 부끄러워서 끝까지 못 보겠더라고요. 자신을 원망했었어요. 시사회가 끝나고 나서 관객들이 악수를 해줬어요. ‘영화 잘 봤어요’ ‘중국 배우가 한국어로 연기하는 게 의외였다’고 말이에요.”

Q. 작품이 끝난 후 많은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제 방에 가서 한 시간동안 멍하니 있었죠. 지인이 조언을 해줬어요. ‘열심히 했다. 하지만 잘해야겠다’고요. 맞는 말이었어요. 결과물이 좋지 않다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없는 거니까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고민했고, 꾹 참고 몇 번이고 제 연기를 다시 봤어요.”

 

 

 


Q. 그럼에도 연기를 계속 하고 있다. 그만큼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생긴 건가.

“앞으로도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해요. 어떤 것이든 노력해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폴라로이드’가 없었다면 많은 분들이 제 연기를 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한 번 한국 관객들과 만났으니, 이제는 ‘양범이라는 배우가 완벽하지 못했는데 많이 노력했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약점을 알고 고 고칠 줄 아는 모습을요.”

Q. 배우로서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있다면.

“한국 관객들에게 양범이라는 배우가 중국 사람이지만, 한국어로도 연기를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꿈’이라고 불리는 그런 거예요. 그리고 나아가서 제가 한국과 중국 문화 교류의 다리가 되고 싶어요.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이해하고, 소통이 됐으면 했어요. 지금은 좋지 않지만, 잘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유지훈 기자 free_fro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