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김윤진에게 월드스타와 함께 붙는 수식어가 있다면 ‘모성애 전문 배우’다. 국내에서 김윤진이 연이어 맡은 역할은 누군가의 ‘엄마’였기 때문에 등장한 꼬리표다. 그녀는 ‘이웃사람’, ‘하모니’, ‘세븐데이즈’ 등 스크린에서 다채롭게 연기를 펼치며 매순간 아이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김윤진은 “모두 다 다른 엄마”라고 손사래 치며 적극 해명했다.
“그래서 더 매 영화마다 신경을 많이 써요. 같은 엄마도 아니었고, 모성애를 다루는 시선도 달라요. ‘6월의 일기’는 아이를 위해서 처참하게 복수하는 영화였다면 ‘하모니’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내는 영화고, ‘세븐데이즈’는 아이를 찾는 엄마, ‘이웃사람’은 아이를 지켜주는 엄마잖아요. ‘시간위의 집’의 엄마는 아들의 운명을 바꿔주죠. 나름 굉장히 신중하게 다른 느낌의 엄마로 가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래도 결국 엄마니까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연기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드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캐릭터) 선택이 없는데 어떡하죠 저는?(웃음)”
그녀가 말한 선택은, 여성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캐릭터 범위였다. 남성 배우 중심으로 형성된 영화 시장 탓에, 여성 배우들이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입지가 좁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40대인 김윤진이 폭넓은 캐릭터에서 활약하기를 기대하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김윤진은 부드럽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영화계 속 여성배우 풀의 갈증을 드러냈다.
“현실적으로 우리 나이에서 엄마 역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다지 많지 않아요. 할리우드처럼 세상을 구하는 여전사같은 역할은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장르적으로도 없죠. 현실 안에 있는 많은 작품 중에 고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모성애를 선택하게 된 것도 있고, 한동안 그건 안 바뀔 것 같아요. 여성이 주도하는 최근의 영화들을 보면 ‘아가씨’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흥행적으로 잘 된 영화들은 ‘미씽: 사라진 여자’처럼 모성애 코드가 늘 있었잖아요. 저도 답답함을 느끼고 악역이나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많지 않아요.”

김윤진은 그녀의 존재감을 단번에 알리기 시작한 영화 ‘쉬리’의 주역들과의 선의의 경쟁을 시작했다. 한석규의 ‘프리즌’은 2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했고, 최민식의 ‘특별시민’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김윤진은 “도대체 누가 4월 극장가가 비수기라고 했나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더니 “함께 흥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수기라서 들어왔는데 아니던걸요? 그 분들이 그런 영화를 찍은 지도 몰랐어요.(웃음) ‘프리즌’이 엄청 잘 되고 있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기운을 저한테 바통터치 해주시고 저희가 잘 되어서 즐거울 때 최민식 선배 영화 ‘특별시민’까지 개봉하면 훈훈하게 마무리 될 것 같아요. ‘쉬리’ 배우들의 흥행이라는 기사에 저희 함께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국 드라마 ‘로스트’, ‘미스트리스’ 시리즈부터 국내에서는 자타공인 스릴러 퀸으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열렬한 활동을 펼쳤던 김윤진은 언제나 겸손했고 사소한 모든 것에 감사해했다. 진짜 ‘월드스타’라면 수식어도 붙지 않는다며,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진심 어리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이미 배우로써의 최고의 내면 가치를 지닌 월드 클래스 스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전까지 다른 영화를 할 때는 의식을 못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이번 영화를 통해서 새로 알게 됐어요. 그나마 자부심을 느꼈던 게, 10년 정도를 돌아봤을 때 (제 영화가) 흥행적으로 실패한 적은 없거든요. 하지만 이번 영화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혜택을 많이 받았었구나 싶었어요. 영화라는 공동 작업이 저 혼자 절대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흥행이 잘 됐을 때, 저만 잘해서 잘 된 게 아니라 수많은 관계자들의 노력을 통해서 이 영화가 흥행이 됐구나 하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됐어요.”
이예은 기자 90090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