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비가 폭우처럼 내리는 해방 후 경성, 어둠이 가득한 한 저택에 최초 신고자의 전화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고 운전수 최승만(고수 분)을 살해한 혐의로 경성 최고의 재력가 남도진(김주혁 분)은 체포된다. 하지만 현장에 남은 건 사체를 태운 흔적과 핏자국 그리고 잘려나간 손가락이 전부였다. 정작 살해당한 사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 미스터리한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두고 법정공방이 벌어진다.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을 펼쳐내는 과정에서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국내 정서에 맞게 각색한 노력이 눈에 띈다. ‘반민특위’를 넌지시 삽입하거나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삼은 만큼, 화려함과 음울함까지 동시에 담아내며 기묘함을 더했다. 더불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방식은 관객들의 입체감 있는 몰입과 추리의 재미를 가미하며 최승만과 남도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심층적인 구조로 풀어내는 데에 일조했다.
특히, 원작인 빌 S.밸린저의 ‘이와 손톱’은 1955년 발표 당시 독특한 서스펜스 내러티브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홀수 장에는 사건 이후의 법정 공방을, 짝수 장에는 사건 발단의 전개를 구현하며 신선한 서스펜스 구조가 돋보였다.
이토록 획기적이었던 ‘이와 손톱’의 내러티브는 60년이 지난 지금, 서스펜스 장르에서 익숙하게 찾아볼 수 있는 기법이 되었다. 대신,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탄탄한 연출과 서사를 더해 원작의 미스터리함을 빼어나게 재현했다.
스릴러의 발판이자 깊숙이 침투해있는 절절한 멜로는 관객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건드리는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후반부에 사건의 반전과 진실이 드러나고 결론에 도달하는 여정에서 각종 장치들이 휘몰아치기 때문에 단조로운 초중반까지는 다소 지루한 감도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장르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 건, 한치의 양보도 없는 배우들의 연기 대결이다. 원맨쇼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수는 ‘석조저택 살인사건’이라는 한 작품 속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입으며 열연을 멈추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근사하며 유머까지 갖춘 마술사부터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사랑꾼’, 그리고 초라한 행색을 한 운전수까지 심도 있게 소화해냈다. 극한의 상황을 마주한 그의 처절함을 따라가다 보면 보는 이도 자연스레 뭉클해진다.
김주혁은 다시 한 번 탈바꿈을 시도했다. ‘공조’ 속 악역과는 결이 다른 사이코패스의 면모를 여과 없이 발휘한다. 무게 있는 눈빛과 느릿한 몸짓은 스크린의 분위기를 단연 압도하며 극 중반부까지의 남도진 캐릭터의 의뭉스러운 모습을 긴장감 있게 유지해 간다. 문성근은 많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팽팽한 연기력으로 박성웅과 치열한 접전을 펼친다.
네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력과 감독의 원작 및 배우들을 활용한 똑똑한 연출이 빛나는 우아한 서스펜스 스릴러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