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이예은 기자] ‘불한당’은 느와르를 향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피 튀기는 액션 전쟁과 두 남자의 밀고 당기는 감정이라는 뻔한 소재가 존재하나 ‘불한당’만의 비주얼과 감정을 파고드는 집중이 그 뻔함을 완벽히 중화시켰다.
기존에 있는 작품들과 스타일의 궤를 달리하겠다는 각오가 엿보이는 승필(김성오 분)과 병갑(김희원 분)의 대담씬이 영화의 포문을 연다. 정통 건달이 아닌, ‘약쟁이’로 자신의 세력을 넓혀온 재호(설경구 분)는 압도적인 전투 실력, 정치적인 감각으로 교도소의 실세로 자리 잡는다. 훌륭한 사업수완으로 교도소 내부에서 자유롭게 담배 사업을 진행하기도 하는 대담함까지 지녔다.
그 가운데에, 누군가가 재호를 죽이기 위해 나서고 교도소의 ‘혁신적인 또라이(?)’로 취급되던 현수(임시완 분)가 이를 막으면서 둘의 사이는 남다른 돈독함을 갖게 된다. 모두에게 절대적 제왕으로 느껴지던 재호에게 현수는 예외였다. 그렇게 둘의 우정은 날로 깊어져가지만 서로에게 드러내지 않은 비밀 탓에 강렬한 긴장감이 그들을 계속해서 휘감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현수의 인생을 뒤흔든 한 사건으로 인해 재호에게 절대적 의지와 신뢰를 갖게 된 현수는 출소 후에 재호와 함께 조직을 제패해간다.

변성현 감독이 모든 사물과 배경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집중하고 선택한 결과는 여실히 느껴진다. 유려하고 리드미컬한 카메라 워킹과 컷을 이용해 세련된 미장센을 선보인다. 성인들이 즐겨볼 수 있는 만화 같은 느낌으로 제작하고 싶다던 변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듯 싶다.
특히, 현재와 과거를 유연하게 오가는 만화적인 구성은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충족시키는 데에 탁월하다. 자칫 호불호 갈릴 수 있는 비비드한 색감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시점과 인물별로 조명 콘셉트를 달리하며 시각적 활기를 불어넣는다.
또한, 빠른 카메라의 속도가 관객의 몰입 유도로 시원하게 이어지며 영화의 백미인 액션씬들이 장관으로 펼쳐진다. 임시완의 재치 넘치는 몸짓과 현란한 카메라 워킹이 돋보였던 교도소 액션씬부터 테크노 크레인을 사용한 최선장 사무실 속 난투극까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더불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전개를 타파한 건 개인적 상처로부터 비롯된 두 남자의 깊은 공감대와 감성이다.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진하게 피어난 사랑처럼 느껴지는 현수와 재호의 관계는 기존 언더커버의 공식을 넘어서며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에서만 감정의 굴곡을 수차례 겪는 현수는 임시완을 통해 완전히 살아난다. 치기 어린 막내의 모습부터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휘두르는 몸짓은 기존 임시완의 이미지를 완전히 가린다. 더없는 처절함과 독기 가득한 눈빛은 ‘원라인’에서 느꼈던 성장의 정도를 넘어섰다. 그런 임시완 곁에서 리듬을 살리고 강력한 무게를 싣는 건 설경구의 압도적인 열연이다. 묵직한 눈빛과 본인이 쌓아온 관록을 가감 없이 발휘하며 그간의 침체를 불식시킬 정도의 부활을 알린다. 특히, 쉴 새 없이 내뱉는 재호만의 웃음소리는 객석을 벗어나서도 귀에 맴돌 정도로 독특하다.
강한 남자들의 세계에서 군림하는 지독한 사자처럼 느껴지던 경찰청 천인숙 팀장 역할의 전혜진의 활약 역시 빛난다. 보통 악인의 대립인물로 자리하던 경찰의 모습이지만 현수를 몰아넣는 천 팀장은 오히려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불한당’은 인물 하나 허투루 쓰지 않은 변성현 감독의 세심한 손길과 과감한 연출 덕을 톡톡히 본 듯 하다. 1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