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의 미학을 보여준 ‘슬기로운 감빵생활’

기자 2018-01-19 10:39:14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유종의 미를 거두며 종영했다.

신원호 감독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지난 18일 쏟아지는 호평과 함께 막을 내렸다. 신원호PD가 ‘응답하라’ 시리즈가 아닌 교도소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밝혔을 때 많은 우려들이 터져 나왔다. 범죄 미화에 대한 걱정들과 함께 시작한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매회를 거듭하며 우려들을 말끔히 지웠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감옥 속 죄수들의 생활을 그려냈지만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을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그 안에서 각자만의 사연은 모두 있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모두가 하나같이 안타까운 사정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동정의 시선은 없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주인공 김제혁 (박해수 분)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다.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는 범인을 쫓아가 주먹다툼을 하는 과정 속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른 김제혁은 결코 억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동생에게 다시 그 상황이 오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 말하는 김제혁은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선택한 것이다. 비록 각종 사건에 휘말리며 머리에 못이 박히고, 어깨 부상을 입고, 교도소 안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이지만 김제혁은 반성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정의감으로 움직인 김제혁을 욕할 것인지 안타까워할 것인지는 시청자들에게 맡긴 채,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연출진이 과도한 욕심을 작품에 투영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것을 담아내고 싶은 연출진의 마음은 알겠지만, 되레 작품은 과해지고 부담스러워진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이것이 신원호PD가 시청자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는 요인 중 하나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은 말이 많지 않지만 모든 것을 충분히 담아낸다. 사과가 필요할 때는 묵직하게 사과하고, 감사의 인사는 부담스럽지 않게 전한다.

많은 명장면들 중 더없이 깔끔했던 장면이 있다. 장발장(강승윤 분)이 장기수(최무성 분)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이후, 대면한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긴장했다. 화나면 아무도 못말린다는 조폭 출신 장기수가 과연 장발장에게 어떻게 화를 낼 것인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굳은 표정으로 장발장에게 손을 올린 장기수를 보며 모두가 숨을 죽였지만 장기수는 그저 가만히 장발장의 어깨를 두드리기만 했다. 용서한다, 괜찮다, 이해한다 등 많은 말들이 오갈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장기수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감정들이 설명됐다.

이처럼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단순한 그림으로도 충분히 깊은 감정을 담아냈다. 속사정은 있지만 미화는 없다. 감언이설과 화려한 대사, 특별한 연출 없이도 캐릭터들의 인간미를 풍부하게 담아낸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쏟아지는 호평 속 막을 내렸다. 죄에 대한 가치판단 없이 감옥 속에도 사람이 있다는 결론으로 종영한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교도소를 작품으로 한 극 중 단연 손에 꼽을 명작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