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계에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있다면 극장가에는 ‘오목소녀’가 있다. 힐링을 앞세워 청춘을 뛰게 만드는 기득권에 반해 일어난 이야기, 청춘에게 ‘잘 지는 법’과 ‘우회하는 법’을 알려주는 영화. 바로 ‘오목소녀’의 이야기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최초 공개되며 관객들로부터 호평 받고 있는 영화 '오목소녀'는 독특한 유머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세상 모든 청춘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선사하는 백승화 감독의 신작이다.
백승화 감독은 전작 ‘걷기왕’에서 청춘을 향한 뜨거운 메시지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어 ‘걷기왕’의 연장선이라는 ‘오목소녀’의 개봉을 앞둔 소감으로 백승화 감독은 “작게 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했다. 배우들도 영화로 개봉하는 것에 재밌어 하더라. 애초에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흥행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밝혔다.
‘미생’ ‘신의 한수’ 등 익숙한 바둑보다 오목이라는 낯선 소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백승화 감독은 “사실 ‘걷기왕’ 시나리오를 쓰며 ‘오목소녀’를 먼저 썼다. 영화로 하기엔 부담스러워 웹드라마를 하게 됐다. 바둑은 사람들이 보기에 심오하고 인생이랑 비결을 많이 한다. 그런 반면 오목은 좀 마이너한 매력. 그런 지점에서 얘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바둑이 근사한 성공, 그럴싸한 거대함이라면 오목은 반대되는 측면이 있다. 항상 인생이라는 게 바둑처럼 대단하거나 그럴싸한 것만은 아니다. 오목처럼 일상스러우면서 장난스러운 것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철학적인 이야기까지 곁들였다.
학창시절부터 원래 오목을 좋아했다는 백승화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잘 했다. 작은 아버지에게 몇 개 배웠다. 필승법은 아니지만 오목 좀 둔다”며 ‘오목소녀’의 감독다운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걷기왕’와 ‘오목소녀’, 다른 이야지만 같은 선상에 있다. 두 작품을 본 관객들은 두 주인공이 꽤 흡사하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에 대해 백승화 감독은 “성장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아직 고민이 많고 부족한 부분이 있는, 어리숙한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오목소녀’는 ‘걷기왕’과 같은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그는 “청춘은 ‘이럴거야’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다. 사실은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은 40대가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도 무게감도 있다. 청춘도 돈도 없다. 청춘 만이 그걸 갖는다고 하지 않는다”며 굳은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백승화 감독은 ‘최애’ 캐릭터에 대해 ‘쌍삼’을 꼽으며 “숨어있는 무림 고수같다. 김정영 배우님과 얘기할 때도 너무 재밌었다. 보통 드라마, 영화에 나오셨는데 누군가의 어머니로 많이 나오셨다고 하더라. 처음에 제안드릴 때 설정만 말씀드렸는데도 시나리오 보기 전에 하자고 하셨다. 그런 중년의 여성캐릭터가 스승의 롤로 나오는 것도 좋다”며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가 꼽은 쌍삼이라는 캐릭터는 좋은 멘토가 돼 극을 이끄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백승화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무엇일까. “쌍삼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자기를 항상 돌아보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내가 믿거나 옳은 것에 빠지는 것이 많다. 하지만 항상 옳은 것은 없다. 나이 들면서 나 역시 경계한다. 내가 믿는 것을 항상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고 답했다.
‘오목소녀’는 지는 법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으로 청춘들에게 남다른 메시지를 남긴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경쟁 사회이기에 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 질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진다. 바둑신동으로 태어나도 바둑으로 성공하지 않을 수 있다. 구체감이 있는 캐릭터가 오목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백승화 감독은 “나는 영화만 해온 사람이 아니라서 영화만 했던 사람들이 가지는 것에서 탈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내 장점이다. 하지만 드럼을 안친지 오래됐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극 중 이지원 배우의 열연이 관객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백승화 감독은 “영남이(이지원 분)는 초등학생 아역이지만 성인 주인공과 나이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지원 배우가 본인을 주인공으로 시즌2를 해달라고 했다. 아역 배우들은 흔히 아들딸로 나와서 납치당하거나, 울고, 보호받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오목소녀’에서는 주체적으로 욕망을 드러낸다. 어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는 캐릭터를 많이 못 봤기에 더 노력했다”며 남다른 작품관을 밝히기도 했다.
화제작들 사이에서 개봉한 ‘오목소녀’, 다른 작품보다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장점에 대해 백승화 감독은 “다른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지점은 유머코드가 다른 것이다. B급이라고 얘기는 하는데. 애초에 소재부터 독특한 유머다. 만화적인 상상력. 한국 영화과는 다른 지점이 장점이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내며 인터뷰를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