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이소희 기자]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걸까. 엄정화는 연기면 연기, 예능이면 예능, 음악이면 음악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꾸준한 자기관리와 함께 식지 않는 열정으로 여성들의 영원한 워너비로 자리하고 있다.
배우로서도 탄탄한 필모그라피를 쌓아온 엄정화지만 음악에 대한 열의도 대단하다. 엄정화는 1993년 데뷔 때부터 9집앨범까지 대부분 1~2년 간 정규앨범을 꾸준히 한 장씩 발매해왔다. 주로 댄스곡을 해오다가 일렉트로닉 장르에 새롭게 도전해 자리를 잡았고, 2008년에는 디스코 장르 곡 ‘디스코(D.I.S.C.O)’로 변신했다.
그런 엄정화가 다시 9년 만에 정규 10집 앨범 ‘구운몽(The Cloud Dream of the Nine)’을 들고 돌아온다. 그간 독특한 시도와 변화를 추구했던 엄정화는 이번에도 역시 파격적인 콘셉트를 예고해 팬들의 기대가 쏠리고 있다. 오랜 공백만큼 더욱 응축된 내공이 담긴 새 앨범을 만나기 전, 엄정화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기다린다.

1989년 MBC 합창단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엄정화는 사실 가수로 먼저 데뷔한 게 아니다. 영화와 광고 등을 통해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1993년이 돼서야 정규 1집 앨범 ‘소로우풀 시크릿(Sorrowful Secret)’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엄정화의 1집은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영화 데뷔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의 삽입곡이었던 ‘눈동자’가 가요 차트 10위 안에 들며 인기를 얻었다. 특히 당시 청순함이 대세이던 여자 가수들 중에서 섹시한 콘셉트를 내세워 자신만의 이미지를 굳혔다.

2집 ‘엄정화2’ 역시 타이틀곡 ‘슬픈 기대’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후속곡 ‘하늘만 허락한 사랑’이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엄정화의 가수 커리어는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기세를 몰아 엄정화는 3집을 통해 톱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3집부터 작곡가 주영훈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첫 곡 ‘배반의 장미’는 지금까지도 엄정화를 대표하는 곡으로 남아있다. 당시에는 ‘배반의 장미’로 엄정화가 데뷔 이후 가요차트 첫 1위를 거머쥐기도 했다.
특히 개성 넘치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이며 엄정화의 색깔을 확실히 굳혔다. 엄정화는 무대에서 장미의 가시를 상징하는 뾰족하게 세운 헤어스타일과 짙은 화장, 검은색 무대의상 등 아방가르드한 섹시미를 뽐냈다.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져오는 엄정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타이틀곡 ‘포이즌’은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2008년 엄정화가 가수로 복귀하던 당시 출연한 KBS2 ‘불후의 명곡’에서 ‘포이즌’이 1위 곡으로 꼽히기도 했다. 후속곡 ‘초대’ 역시 엄정화의 대표곡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타이틀곡 ‘몰라’는 사이버틱한 메이크업과 디자이너 이상봉의 물이 찰랑거리는 헤드폰이 돋보이는 무대로 주목을 받았다. 이 곡은 “몰라 알 수가 없어”라는 가사와 함께 두 손을 양 귀에 갖다 대는 제스처 등 유행을 선도했다. 후속곡 ‘페스티벌’ 역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전체 프로듀싱을 맡은 정재형부터 윤상, 달파란, 롤러코스터 전 멤버 최진우 등 일렉트로닉의 대가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여기에는 엄정화의 적극적인 욕심이 한몫했다. 당시 엄정화는 당시 국내에서 일렉트로니카를 대표하는 뮤지션 달파란을 무작정 찾아가고 긱스 출신 정원영에게 곡을 받기 위해 콘서트 게스트를 자청하는 등 노력을 했다.

이소희 기자 lshsh32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