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가요] 사라지는 '0시 발매', 누굴 위한 개혁인가

기자 2017-02-17 14:45:57
 


[메인뉴스 이소희 기자] 과거 인기 있는 가수의 새 앨범이 나오는 날, 레코드 가게 앞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얼마나 긴 줄이 늘어섰는지가 가수의 인기를 알 수 있는 척도 중 하나였다.

이 시대 팬들은 음원차트에 줄을 세운다. 일명 ‘줄세우기’라고 불리는데, 한 가수의 노래가 연달아 순위를 차지하는 현상이다. 팬들은 열심히 음원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하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상위권에 안착할 수 있도록 힘을 쏟는다. 물론, 듣고 또 들어도 좋은 ‘내 가수’의 노래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듣는 것도 있다.

요즘 음원은 보통 자정 혹은 정오에 발매된다. 그 중 자정 발매 음원들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새벽은 음원사이트 이용자 수가 감소하는 시간대라서,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이 스트리밍을 하더라도 차트 인(in)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신곡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집중된 화력이 발생해 좀 더 손쉽게 줄세우기를 이뤄낼 수 있다. 이렇게 1위를 차지하거나 줄세우기에 성공한 가수의 소속사들은 다음날 ‘차트 올킬’이라며 홍보를 한다.

그런데 이 ‘줄세우기’가 음원차트의 공정성을 해치는 풍토란다. 그간 공정한 음악시장 질서를 위한 대책을 추진해왔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지난해 ‘0시(자정) 발매 음원에 관한 권고안’을 내렸다. 0시 발매 음원이 ‘줄세우기’를 비롯해 사재기, 어뷰징 등 부당한 결과를 낳는다는 판단이다.

멜론, 벅스, 지니, 엠넷, 소리바다, 네이버뮤직 등 국내 주요 음원 유통사는 차트 개혁을 실시하기로 했다. 실시간 차트는 그대로 두되, 집계 방식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달 말부터 자정에 발매되는 음원은 당일 오후 1시에 순위가 반영된다. 원래는 자정에 곡이 나오면 1시간 후인 오전 1시에 즉각 차트 반영됐다. 이에 따라 자정에 발매하는 음원들은 거의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개혁안에 대중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음원차트의 불공정성의 원인이 정말 ‘0시 발매’냐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실시간 차트를 비롯해 새로 생겨난 그래프, 5분차트 등이 오히려 차트 경쟁의 과열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은 실시간 차트 폐지 의견에 대해 “시스템까지 변화를 줄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를 접한 대중의 반응은 더욱 싸늘해졌다. 여러 차트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경쟁 분위기를 완전히 가라앉히면 본인들의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겉핥기식 방안을 내렸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팬덤의 분노는 더욱 거세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자정에 음원을 발매하는데, ‘0시 발매’를 저격한 것은 음원차트 교란이 아이돌 팬덤 탓이라는 셈이다. 요즘 팬덤은 폭발적인 화력을 발휘하기 위해 같은 시간 스트리밍을 진행하는 전략인 ‘총공’을 펼치고 있고, 문체부는 이를 지적했다.

 

 

 

 

 

‘0시 발매’는 ‘총공’을 수월하게 만들기 때문에 분명 줄세우기에 큰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0시 발매’가 차트의 공정성까지 저해하는 행위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중과 팬덤을 분리해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아닐까. 공정성을 위한 방법이 오히려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다.

팬덤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듣고 싶은 음원을 들을 뿐이다. 더 나아가 아이돌 팬덤은 가요시장을 이끌어가고 음원사이트의 수익을 담당하는 중심축이다. 거대한 팬덤들로 인해 음원차트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엉뚱한 해결책이 오히려 이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요즘에는 아이돌 노래의 줄세우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줄세우기를 하더라도 다른 곡들이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오랜 시간 버티기가 힘들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구르미 그린 달빛’ ‘도깨비’ OST 등처럼 꼭 아이돌 노래가 아니어도 줄세우기를 하는 일도 더러 있다. 이는 ‘0시 발매’로 인한 불공정성의 원인이 아니다. 드라마가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그 인기가 고스란히 차트에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아이돌 팬덤과 전혀 연관이 없고 말이다.

해결책의 허술함도 발견된다. 앨범 발매 당일 차트 진입을 막아놓더라도, 다음날 새벽에 스트리밍을 돌리면 다시 줄세우기를 할 수도 있다. 또 대부분의 곡들이 자정을 피해 정오 발매를 하게 되면, 이 시간에 똑같은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차트 진입 가능성이 있었던 신인이나 비(非)아이돌의 얼마 없는 기회마저 앗아가는 꼴이다. 역차별 없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심도 깊은 방안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0시 발매 폐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볼 순 없을 것 같다”면서도 “0시 발매로 인해 유통사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 그리고 0시에 발매하면 아무래도 팬덤이 강력한 곳이 유리하다보니 좀 더 공정한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오에 음원 발매가 쏠릴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관계자는 “음원 발매 시간대가 하나로 통일되면 노출될 수 있는 곡 수가 줄어들게 된다. 차라리 출근길과 퇴근길이나 하교길 등, 오전과 오후로 대중의 음원차트 이용시간대를 파악해서 또 다른 발매시간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어 “차라리 실시간 차트를 내세우기보다, 싱글과 미니 혹은 정규앨범 차트, 방송음원 차트 등을 따로 나눠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소희 기자 lshsh32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