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이준호, ‘인생’작을 그리다

기자 2017-04-10 10:26:36
사진=김현우 기자
사진=김현우 기자


배우 이준호와의 대화는 능수능란했고 진솔했다. KBS2 드라마 ‘김과장’의 철저한 분석과 진짜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오랜 아이돌 경력의 내공과 ‘김과장’을 통해 얻은 자신감과 성숙이 내밀하게 얹어져 있었다.

이준호는 ‘김과장’에서 전직 중앙지검 범죄 수사부 엘리트 검사였으나 권력 욕심에 눈이 멀어 TQ그룹 재무이사로 취임해 비리를 저지르는 서율을 연기했다. 서율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불문 반말을 탑재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도 강한 카리스마(라고 읽고 싸가지라 부르는 것)도 있다.

“아직은 화면에 내가 어떻게 나오겠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워서 드라마를 통해 제 모습을 보는데 재미있게 나왔더라고요. 연륜이 점점 쌓이다 보면, 대본을 보면서 ‘이 신은 이런 타이밍에 나오겠구나’ ‘어디에 무게를 실어야겠구나’ 알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무조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어색함 없이 서율에 스며든 이준호는 자연스러움을 뛰어넘었다. 서율 그 자체였다. 그 배경에는 꼼꼼한 캐릭터 분석이 있었다. 그는 행동, 표정 등 지문대로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와 원인, 성격을 하나하나 파악했고, 직접 설명을 듣고 나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도적인 캐릭터는 처음 해보는 거였어요. 이전에는 중심을 잡아주는 단역 정도였어서, 이번에는 좀 더 역동적이고 싶더라고요. 눈썹과 입꼬리를 계속 움직이는 등 표정을 아낌없이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탁상을 치고 주먹을 쥐었다 피거나 서류칼을 사용하는 등 움직임도요.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을까’ 생각해보니 너무 잘난 거예요. 비상한 머리가 나쁜 쪽으로 흘러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봤어요. 그런 사람들은 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겠지, 사람 말을 끊겠지, 그러다보면 대화할 사람도 없이 혼자 지내겠지 싶었죠.“

“내공이 부족해서 온오프(on-off)가 잘 안된다”던 이준호는 서율에 완전히 몰입하기 위해 촬영 전 두 달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서도 최대한 말을 삼갔다. 그는 “마음의 정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거침없는 연기를 하지 못하고 주저했을 것”이라며 당시 시간들을 소중히 여겼다.

서율은 극중 악역이지만, 동시에 귀여운 구석도 상당했다. 극 초반부터 초코바, 피자, 샌드위치 등을 맛깔나게 먹어대며 ‘먹소(먹보 소시오패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원래 서율이 당뇨병이 있는 캐릭터여서 단 음식을 먹는 장면이 많았어요. 그런데 당뇨 설정이 빠지게 되고, ‘먹는 것’에 어떤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싶었죠. 윗사람 앞에서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는 게 힘든 일인데 서율은 혼자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에서 불도저 같은 성격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권력에 대한 탐욕, 야망으로도 비춰지고요.”

먹는 모습은 성격을 나타내는 행동 중 일부였기에 사랑받는 포인트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단다. 실제로 이준호는 먹는 촬영할 때도 세심하게 의도를 담았다. 극중 나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회를 먹다가 뱉는 행동은 지문에도 없었다. 이준호는 “늘 먹을 것을 삼키는 친구인데 음식을 뱉을 정도면 굉장히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일 거라고 예측했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김성룡(남궁민 분)과의 티격태격 케미도 서율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이유로 한몫했다. 쉴 틈 없이 ‘다다다다’ 말이 오고 가는, 애증이 담긴 만담(?)은 그야말로 작품의 ‘꿀잼 포인트’였다.

“리허설 때 꼭 합을 맞춰봐요. 성룡과는 원테이크 원신으로 가는 게 많았어요. 핑퐁처럼 대화가 오가야 해서요. 말장난처럼 하는 게 포인트였어요. 오디오 감독님들은 오디오 겹치는 걸 싫어하시는데, 저희가 마가 안 뜰 정도로 계속 물리게 대사를 했죠. (웃음) 드라마 특성상 대사 처리를 빠르게, 트렌디하게 가져가자 생각했어요.”

 

 

 

 

 

 

 

그가 “자유로운 현장이었다”고 여러 번 언급할 정도로 애드리브를 지양하지 않았던 분위기도 공이 컸다. 덕분에 서율의 반전매력이 담긴 애드리브도 쏟아졌다. 성룡에게 “노잼(재미없다)”이라고 신조어를 사용한 장면, 손가락 욕을 연상케 하는 의미심장한 장면 등이 그렇다.

“원래는 ‘X노잼’이라 하려고 했는데, 안된다고 해서 손으로 숫자 ‘10’을 만들어 보이고 말로 ‘노잼’이라고 했어요. (웃음) 공영방송에서, 케이블에서도 할 수 없는 대담한 손가락 욕도 준비했어요. 조상무(서정연 분)에게 죄목을 읊으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는데, 가운데 손가락만 남기는 거죠. 과감하게 했어요. 당연히 욕은 하면 안 되지만 극단적인 싸가지 캐릭터는 이런 부분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긍정적인 반응을 해준 이유는 단순히 이준호가 코믹 연기를 선보여서만은 아닐 테다. 이준호는 단순히 흥밋거리만을 위해서가 아닌, 캐릭터 성격의 연장선상에서 행동을 상상해 설득력을 부여했다.

번외로 재미있던 점은, 말장난을 치고 귀엽게 미운 말을 내뱉는 서율 그리고 이준호의 간극이 없었다는 점이다. 너무나 찰떡같이 달라붙는 대사였다. 실제로 이날 이준호는 직접 애드리브 재연까지 해주며 본인도 웃긴 듯 비실비실 웃었다.

 

 

 

 

 

 

 

“엄청 자제한 거예요. (웃음) 더 장난치고 싶은데 멈춰야할 지점을 알고 있으니... 너무 장난치고 싶었어요! 저는 주인공과 대립을 해야 해서 코믹을 쉽게 가져갈 수 없었어요. 박영규 선배님도 ‘우리는 (시청률이 잘 나오는) 분위기에 취해서 들뜰 필요 없이 계속 무게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고요.”

서율은 극 중반부부터 변화의 조짐을 보이더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의인’ 비슷한 인물로 탈바꿈한다. 물불 가리지 않고 권력만을 좇았지만, 주변 인물들의 진심 어린 걱정과 애정으로 인해 정의감의 불씨가 다시 되살아났다.

“변화의 계기가 단순히 윤하경(남상미 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최소한의 정의를 가지고 검사로 활약했던 애인데, 박 회장(박영규 분)이 하는 행동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거예요. 조 상무 패거리에게 돌까지 맞고 지쳐있었는데, 그 와중 윤하경을 만난 거죠.

서율이 왜 괴물이 되었는지, 대본에는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았어요. 병원에서 윤하경에게 ”나도 멈출 수가 없다“고 고백하는 신이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는 신이었죠. 원래 대사는 간결했는데, 내가 서율이라면 하경에게 더 말할 수 있겠다 싶어서 살을 더 붙였어요.”

 

 

 

 

 

 

 

감옥에 가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박 회장,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 속에서 서율은 김성룡처럼 희망을 제시했다. 뻔한 권선징악 스토리일 수도 있지만, 악역이 의인으로 물드는 스펙터클한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제가 감히 직장인에게 드릴 말씀은 없지만, 박 회장 같은 인물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에는 착한 뉴스보다 마음이 아픈 뉴스가 더 많잖아요. ‘김과장’은 이런 현실을 다루면서도 통쾌하게 만들어주는 사이다 같은 비현실적 요소들이 있어서 시청자 분들이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시기도 잘 맞았던 것 같고, 모든 분들이 ‘우리 사회에도 김과장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으로 응원해주신 것 같아요.”

이준호가 ‘김과장’에서 보여준 것은 오피스물 그 이상이었다. 스스로도 “드라마 속에서 혼자 다양한 장르를 했던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배우로서도 ‘인생 캐릭터’를 만났고, 작품을 통해 인생을 배우며 진짜 ‘인생’작을 그려냈다. 서율이 마침내 김과장이 된 것처럼, 이준호도 더 나은 이준호가 됐다.

“서율은 제가 여태까지 보고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풀어낼 수 있는 역할이었어요. 자만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을 밑거름 삼아 더 잘 이끌어볼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어요. 다음 작품은 공백을 줄여서 좀 더 공격적으로, 과감히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소희 기자 lshsh32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