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희의 듣는카페] 추억을 달래줄 수지X덕원의 ‘핫초코’

기자 2017-04-14 14:28:43

[메인뉴스 이소희 기자] 한 CF에 나오듯 공유에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가 있다면, 가수에겐 팬들만 알고 있는 은밀한 카페가 있답니다. 타이틀곡만 소비되고 빠르게 사라져버리는 요즘, 알고 보면 다양한 재료로 훌륭한 조합을 이뤄낸 명곡이 많거든요! 미처 알지 못했던 수록곡의 비밀스러운 레시피를 파헤쳐드립니다. <편집자주>
 

디자인=정소정
디자인=정소정


03. 수지X덕원 'Canon EOS M' 광고 캠페인송 - ‘모멘트(moment)’

무려 2012년도에 발표됐던 앨범으로, 생소한 이들도 있을 테다. 싱글 ‘모멘트’는 캐논에서 광고 캠페인의 일환으로 무료 배포를 했던 음원이다. 당시 미쓰에이(missA)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던 수지와 인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브로콜리너마저의 덕원이 함께 노래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앨범에는 수지와 덕원의 듀엣 버전과 덕원의 솔로 버전이 실렸다. 두 곡 모두 귓가를 감미롭게 감싸는데, 청아하면서도 담백한 수지의 목소리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덕원의 분위기가 만난 듀엣곡도 참 좋다.

‘모멘트’를 광고의 CM송쯤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캠페인용으로 치부되기에는 노래의 메시지가 상당하다. 덕원이 작사 작곡 편곡 모두 맡은 이 곡은 브로콜리너마저 특유의 소박하고 솔직한 감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사는 간결해 반복되지만 지루함은 전혀 없다. 오히려 차곡차곡 얹어져 들을 때마다 또 다른 감상을 선사한다.

디자인=정소정
디자인=정소정


◇ 레시피: 시나몬 가득, 부드럽고 달콤한 핫초코

때마침 비 소식이 들려와서 다행이다. 비 오는 창밖 풍경과 잘 어울리는 음료(노래)이기 때문이다. 핫초코를 위해 따뜻하게 덥힌 머그잔에 카카오 가루를 한가득 붓고 끓인 우유를 넣어 휘젓는다. 그 위에는 부드러운 밀크폼을 풍성하게 올린다.

덕원은 노래 목적인 카메라의 특성과 추억의 교집합을 기가 막히게 파악했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셔터를 누르지만, 메모리카드 용량이 가득 찬다면 지난 사진을 지울 줄도 알아야 한다. 그 빈자리는 신중하게 선택된 순간들로 채워진다.

노래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댄 변하지 않는 것을 믿나요’라며 시작된다. 이어 ‘때론 잊혀지는 것들이 더 아름다울 것 같아요’ ‘그 땔 잊지 못하는 마음들이 무슨 소용 있을까요/함께한 기억들이 쌓일수록 지워야할 일이 더욱 많을 텐데’라고 말한다.

끝자락 ‘우리가 보는 만큼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는 가사는 씁쓸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다.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눈동자에, 마음에 와닿는 풍경만을 담듯 우리도 모든 것을 안고 갈 수 없다.

‘모멘트’는 이 서글픈 깨우침을, 마치 핫초코처럼 부드럽게 알려준다. 딱지가 가라앉은 추억에도 여전히 아물지 못한 이들을 토닥여주며 위로 해준다. 귓가에 흘러가듯 편안하게 내려앉는 멜로디와 감미로운 듀엣은 차가운 마음을 품어준다.

‘모멘트’의 핫초코 위에는 시나몬 가루를 뿌려야 한다. 시나몬은 향이 강해 호불호가 갈리지만, 막상 음료와 섞이면 초코의 달콤함을 중화시키고 풍미는 끌어올린다. 추억의 잔상처럼 남은 텁텁한 끝 맛은 덕분에 깔끔해진다. ‘모멘트’의 풍부함 속 간결함처럼 말이다.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지만 않은 현실, 어쨌든 우리는 결국 추억을 지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소희 기자 lshsh32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