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멋진 삶을 사는 배우, 고소영

기자 2017-05-17 17:42:11

[메인뉴스 이소희 기자] 어떻게 보면 '예쁘다'는 말보다 '멋지다'는 표현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단순히 외적인 칭찬을 넘어서서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하며, 그 어떤 기준을 정하기도 힘들다. 배우 고소영은 예쁨을 넘어서서 늘 멋진 나이를 살고 있었다.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완벽한 아내’ 인터뷰 차 만난 고소영은 단발로 머리를 싹둑 자른 모습이었다. 이유를 묻자, 고소영은 마치 친구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 듯 입을 열었다.

“전부터 단발 해보고 싶었는데 어제 잘랐어요. 머리카락 길이를 많이 자르면 기증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조금 자르면 티도 안 나고 스트레스도 해소할 겸 확 잘랐죠. 여자들은 또 그런 게 있잖아요. 재복이가 꾸밀 수 없는 캐릭터여서 작품 끝나자마자 여자들이 스트레스 풀려고 하는 것들을 했어요.”

‘완벽한 아내’에서 고소영은 남편 구정희(윤상현 분)은 바람을 피고 남편의 스토커 이은희(조여정 분)에게 시달리지만 이를 당차게 극복해나가는 주인공 심재복 역을 맡았다. 똑부러지는 성격과 함께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넓은 마음도 가지고 있는 따뜻한 캐릭터다.

고소영은 “재복이는 화장도 안하고 다니다보니 편하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체력도 괜찮았고 드라마 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기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그는 10년의 공백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성숙해진 감정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요즘 그런 걸 생각해요. 예전에는 읽히는 연기를 했거든요. 힘주는 연기, 힘 빼는 연기가 정해져 있었고, 그래야 관객들이 보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나의 이미지가 있을 거라는 거죠. 그런데 이제는 연기 같지 않은, 갇혀 있지 않고 자유분방한 연기를 하고 싶어요. 할리우드 보면 몸이 자유로운 배우들도 많잖아요. 리얼한 연기를 위해 극중 환경에 맞게 상황을 최적화시키고 상황을 상상하기도 해요. 뭐든지 진짜여야 하는 것 같아요.”

딸과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자 화통한 성격까지, 고소영과 극중 심재복은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고소영의 연기는 현실처럼 다가왔고, 감정 역시 진실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우는 신이나 자는 신이 많았는데, 저도 아이가 있다 보니 신경을 많이 써줬죠. 아이들 신이 밀려있으면 애들 먼저 찍어서 먼저 보내자고 그랬어요. 아역배우의 부모님들은 말씀을 잘 못하실 테니까요. 성장기 애들인데 새벽까지 촬영장에 있는 걸 보면 부모의 마음으로서 안쓰러워요. 저희 집도 9시 반, 10시 되면 ‘영업 끝!’이라면서 불을 끄거든요. 특히 극중 아들은 실제 제 아들과 동갑이에요. 서로 눈을 보니 진심이 통하는 것 같더라고요. 쫑파티에서 애들이 손편지를 줬는데 눈물이 났어요.”

그는 캐릭터 비주얼을 연구할 때 제작진이 ‘뽀글 머리를 해야 하나, 고쟁이바지를 입어야 하나’ 그러기에 “내가 실제로 아이 둘 있는 아줌마인데 왜 그렇게 해야 하냐”고 했단다.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는 고소영 덕분에 꾸며낸 아줌마 심재복은 없었다.

“재복이는 억척스럽다기보다 멋있죠. 그 모습이 실제 우리나라 엄마들의 모습이기도 하고요. 그런 걸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도 나이가 드니 예쁘다는 것보다 멋있다는 칭찬이 좋더라고요.”

고소영의 연기 호평과 달리 드라마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불륜과 스토커, 새로운 사랑 등 여러 소재를 개연성 없는 전개로 이어가다보니 드라마는 점점 산으로 갔다. 시청률은 낮아도 작품을 지지하는 마니아층이 많았던 ‘완벽한 아내’는 결국 팬들도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시청률이 그렇게 높지 않아도 호평은 받았던 것 같아요. 시청률을 떠나서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걸 못 지킨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요. 마니아 팬 분들이 실망하지 않게 ‘웰메이드’라는 걸 지키고 싶었거든요. 평범하지만 강한 여성상을 그리길 바랐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캐릭터가 점점 힘이 빠졌던 것 같아요. 나중에 가서는 은희만 정상이고 다들 비정상이라고 느끼는 상황까지 왔는데, 누구 하나 삐딱선을 타서 분위기가 흐려지는 게 싫었어요.”

고소영은 너무 서러워서 작가를 찾아가 운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는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재복이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는 말이다”라고 자신의 의도를 조심스럽고도 정확하게 짚었다.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어서 연기하는 재미가 있긴 했다”고 덧붙였다.

“본인 연기에 만족하는 배우는 없을 것 같아요. 점점 캐릭터에 혼란이 와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어려웠는데, 감독님도 그걸 이해해주셨고, 저도 스스로 설득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연기를 했어요. 단순히 대본 나오는 대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보니 정신적인 소모가 컸어요. (극중 러브라인인) 성준을 안을 때도 남녀의 느낌인 건가, 따뜻한 느낌인 건가 고민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다음 작품은 희로애락이 있되 주체성을 가진 캐릭터였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는 점이다. 고소영은 “그래도 누구 하나 캐릭터를 놓지 않고 슛 들어가면 열심히 했다”고 증언했다. 윤상현 역시 그동안 착한 연기를 주로 해왔는데 오랜만에 악역을 맡으니 재미있었다고.

“조여정은 제 모습을 알고 나서 ‘언니는 이렇게 허당기 있고 코믹한 캐릭터를 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쪽으로 끌려요. 전 거리를 다닐 때도 그냥 다니거든요. 못 가는 곳이 한 군데도 없어요. (웃음) 신랑이 선글라스나 모자를 쓰라고 할 정도에요. 아이 친구 어머니들이 ‘여기 오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냐’고 걱정하시면 괜찮다고 해요.”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오픈하는 고소영은 육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아이답게, 평범하게 돌보고자 노력했다.

“아이들을 대중에게 공개를 안 하는 것도, 하는 것도 아니에요. 숨겨서 키우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 다 해요. 오히려 어린이집 선생님이 ‘단체사진에서 빼고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배려해주시는데, 전 불필요한 개인사진을 올리는 게 아닌 이상 단체생활하면서 해야 하는 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자기만 못하는 게 생기는 건데 그걸 이해할 나이도 아니고요.”

10년의 공백기 동안 육아에 집중한 고소영의 현재 모습은, 당연한 소리겠지만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는 아이의 교육에 대해, 엄마들과의 모임에 대해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저에겐 숙제가 있었죠. 일을 안 하는 배우에 대한 안 좋은 시선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도 죄송스럽고 팬들한테도 미안해요. 요즘에는 열심히 활동해서 예뻐 보이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보다는 많이 편해지고 내려놓은 것도 있어서, 역할 장르 가리지 않고 다 하고 싶은 욕심이 커졌어요. 이번 작품을 계기로 다음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구체적인 생각도 들고요. 좋은 사인인 것 같아요. 빠른 시간 내에 찾아뵙고 싶어요.”

엄마로서도, 배우로서도 뭐 하나 놓치는 것 없이 척척 해내는 고소영이었다. 여기에 연륜으로부터 얻은 소신과 깊은 생각들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멋진 사람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이 전 싫어요. 부러우면 그만큼 노력해서 그렇게 돼야 한다고 봐요. 저도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고, 말을 안 하는 것뿐이죠. (웃음) 더 많이 갖고 싶다는 생각보다 결핍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전 동물적이거든요.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사람들 만나 토론하기도 하고, 에너지 받을 부분이 있으면 담으려고 해요.”

이런 모습이 바로 ‘완벽한 아내’일까. 더군다나 고소영은 ‘완벽한 아내’이자 ‘완벽한 엄마’인 어머니를 두고 있었다. 어머니가 롤모델이라던 고소영은 “엄마는 아직도 허리 24인치에 보톡스도 한 번도 안 맞으셨다. 곱고 중후하게 늙으셨고, 항상 긍정적이다.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사고방식도 개방적이고 손재주도 좋으시다”면서 엄마 칭찬을 한가득 늘어놨다.

“엄마처럼 되려면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저도 예쁘기보다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외면적인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거요. 외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고 이제 와서 예쁜 걸로 경쟁하면 굉장히 미울 것 같아요. 10살, 20살차이 나는 후배들을 질투하고 싶지 않아요. 그들은 그들만의 매력이, 저는 저만의 매력이 있는 거죠. 젊음을 시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가 있고 남을 탓하기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는 고소영이 대단했다. 그의 열린 생각 덕분에 일과 육아라는 힘든 시소 위에서 보기 좋게 균형을 잡아갈 수 있던 건 아닐까.

“지금으로서는 작품을 보는 게 우선이에요. 드라마나 영화 다 보고 있어요. 아이들도 키워야 하지만, 집안일만 하면서 작품을 기다리기보다 저한테 남을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기다리고 싶어요. 아들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데, 저도 같이 가서 배우려고요. 그러면 아이들과도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저한테도 좋지 않을까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