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이소희 기자] 이태원 한 지붕 아래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며 함께 살고 있는 두 남자가 있다. 이들의 첫 만남은 드라마 속 남녀주인공 같았다. 두 사람은 대화 내내 한 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천생연분(?)의 기운을 뿜어냈다.
두 남자의 이름은 1415(일사일오). 최근 첫 번째 미니앨범 ‘디어: 엑스(DEAR: X)’를 발매하고 데뷔한 1415는 주성근, 오지현으로 구성된 듀오다. 한여름 날씨 같던 오전, 이태원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형제 같다’였다. 화이트와 블랙, 반대 색상의 옷을 입고 온 것처럼 다른 듯 하면서 분명 어딘가 닮아있는 구석이 있었다.
“같이 살면서 싸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서로 안 부딪힐 만 하게 해요.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힘든데 신기해요.”(주성근) “형은 거의 천사에요. (웃음)”(오지현)
“서로 음악 스타일이 다르긴 한데 비슷한 부분도 있었어요. 저희는 블루스, 재즈 이런 장르를 좋아하거든요. 이걸 제외해도, 오히려 같은 장르를 하는 친구들보다 더 잘 맞는 것 같아요.”(주성근) “노래를 듣고 느끼는 감성들이 비슷한 것 같아요.”(오지현)
1415. 얼핏 보면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 같지만, 알고 보면 분명한 정체성이 담긴 숫자다. 이는 두 사람이 노래를 만들 때 자주 사용하는 코드인 1도-4도 1도-5도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1415의 음악색깔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두 사람 성을 합쳐서 ‘준오’로 할까, 두 사람이니까 ‘두 사람’이라고 할까 했었어요. 데뷔 전 쓰던 팀 계정 아이디도 ‘두 사람’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팀의 느낌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면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름이면 좋을 것 같아서 숫자를 사용했어요.”(오지현)
1415의 시작은 4년 전, 형 주성근이 보컬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실용음악학원에서였다. 제자 오지현이 연주하는 찰나의 순간을 마주한 주성근은 마음을 빼앗겼고, 바로 합을 맞춰보게 됐다.

“한 곡 나오는 것도 힘든데 그때 6곡 정도가 나왔어요. 지현이가 학원에 오래 머무르던 편이라 계속 저랑 같이 작업을 해왔죠. 그러다가 같이 팀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현이가 먼저 같이 살자고 제안했고, 얼마 안 걸려 집을 구해왔어요. 그때부터 같이 살면서 지금까지 만들었던 노래들을 다듬고 완성시켰어요.”(주성근)
“홍대에서 계속 공연하고 반응을 보고 했는데, 일부러 홍보를 별로 안 했어요. 팀 이름도 말하지 않고 우리 이름만 공개하고 노래했죠. 저희 노래 그대로를 들려드리고 피드백을 얻고 싶어서요.”(오지현)
그렇게 음악으로 선생과 제자로 만나 동거까지 하게 된 두 사람은 3년간 첫 작품을 묵혀뒀고, 그 곡으로 레이블 온더레코드(소속사 유니버셜뮤직)에 들어가게 됐다. 그게 바로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선을 그어주던가’다.
‘선을 그어주던가’는 일명 남녀간의 ‘썸’을 주제로 한 노래다. ‘금요일인가 네가 만나자 했던 날이’로 시작되는 가사는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를 떠올리게 한다.
“맞아요. ‘금요일에 만나요’를 듣고 만든 노래에요. 그 노래가 여자 입장인데, 생각만 하는 거고 직접 이야기를 하지 않잖아요. 썸 관계이지만 답답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남자 입장에서 답가 느낌으로 썼어요.”(주성근)
적극적인 내용이지만 노래 자체가 저돌적이지는 않다. 어쿠스틱한 멜로디와 스윗한 목소리는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성큼성큼 다가와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이 곡 외에도 ‘디어: 엑스’를 이루고 있는 곡들은 모두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살랑거리면서도 섬세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멤버들의 모습과 꼭 닮아있는 감성이다.
그렇지만 1415는 ‘기본적으로는 우울한 정서를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이야기한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지금까지 쓴 곡들을 보면 80% 정도는 우울한 노래에요. 그 나머지 20%가 첫 앨범에 실린 곡들이죠. 대중에게 선보이는 첫 앨범부터 우울하면 안 되니까 듣기 좋은 노래, 편하게 오래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을 모았어요. 첫 앨범을 편지를 쓰는 느낌으로 들려줬다면, 다음 앨범에서는 우리 이야기도 많이 하려고요.”(주성근)

“우울한 사람도 사랑은 하잖아요. 분명 기쁜 날이 있을 거예요. 우울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로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DEAR: X’로 받는 사람에 집중했다면, 다음 앨범은 ‘FROM: X’로 쓰는 사람에 집중된 이야기에요.”(오지현)
그래픽 디자이너 이솔(비너스 맨션)이 작업한 앨범 재킷은 오묘하다. 녹색과 복숭아색의 조합으로 감각적인 연출을 했는가 하면, 한자로 쓰인 팀명도 인상적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면 깜짝 놀랄 디테일도 숨어있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 분이어서 작업 요청을 했어요. 음악을 듣고 느끼는 분위기로 작업해주셨죠. 가을~겨울에도 앨범이 나온다고 했잖아요? 그때 낼 앨범까지 다 들어보시고, 이미지 콘셉트가 이어지도록 작업해주신 거예요.”(주상근)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이야기했어요. 건물 안 어떤 공간을 할지, 주방이나 욕조 등 이야기도 나왔고, 조명을 어떻게 할지 등 공간을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했어요. 결국 침실로 했는데 자세히 보면 배게도, 찻잔도 모두 2개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 공간인 거죠.”(오지현)
팀에서 주성근은 보컬과 작사를, 오지현은 기타와 작곡을 맡고 있다. 오지현은 주성근의 가사에 대해 “형의 글은 신선하다. 직접 배운 게 아니다보니 독창성이 있다”고 칭찬했다. 주성근의 작업 방식은 이야기를 쭉 써놓은 뒤 깎아내는 편이다. 주성근은 “말하는 느낌, 말투 등 신경을 쓴다. 이야기는 일관돼도 노래는 달라야 하니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경험담도 있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써놓은 뒤 나중에 꺼내다 써요. 1번 트랙 ‘평범한 사랑을 하겠지만’도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일상적인 게 진짜 드라마이고, 아름답고 멋지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주성근)

“제가 옆에서 쫑알대면 가사로 잘 조합해줘요. (웃음) 저는 설명을 많이 해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시작만 하다가 3분이 다 가는 거죠. 그리고 형 목소리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이야기마다 다 다른 감성과 톤이 있어요. 범위가 넓어요. 그걸 표현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좋아요.”(오지현)
“지현이도 노래 잘 해요. 자기만의 느낌이 있어요. 공연 때도 한 두곡씩 부를 거고, 저도 시킬 거예요. 지현이가 메인으로 노래하고 저는 코러스로 하려고요.(웃음) 지현이가 노래하는 걸 들어본 사람들은 칭찬해주는데 부끄러워하더라고요.”(주성근)
“고급인력이 코러스를 하면 부담이죠. 하하.”(오지현)
비단 1415는 노래하고 기타치고, 작사하고 작곡 편곡만 하는 팀이 아니었다. 서로 조화롭게 융화되고 시너지를 발휘해 유명세가 아닌 ‘노래’를 좇는 ‘가수’였다. 그러면서도 꼭 음악으로 틀을 가두기보다,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과 표현을 받아들이는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소속사에 들어가면서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인디 본연의 뜻을 살렸기 때문이에요. 앨범 커버를 작업한 작가도 저희가 미팅을 했거든요. 뮤직비디오 제작도 그렇고요. 하나하나 저희가 다 작업하니 앨범을 대하는 느낌도 남달라요. 형과 같이 계속 노래도 연구하고 표현을 위한 공부도 해요. 브랜딩이나 인테리어, 사진, 패션 등 여러 예술 분야를 좋아하거든요.”(오지현)
“유명해져서 좋은 건 ‘우리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에요. 직업이 ‘가수’인 사람이니까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등 노래를 들을 때 빠져들어서 상상하게 되는 노래들이 있는데, 저희 노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추억처럼 떠오르기를 바라요.”(주성근)
이소희 기자 lshsh324@naver.com 사진=유니버셜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