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뉴스 이소희 기자] 지금은 촌스럽게 느껴질 테지만, 90년대 음악 잡지에서 가수들에게 주로 던져지던 단골 멘트가 있었다. 바로 ‘10년 뒤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이었다. 당시 아이돌 수명이 대부분 5년 이하로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시절, 이들에게 10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자 먼 미래였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가수들의 답변은 마치 어린이들이 ‘10년 후 미래’를 주제로 요상한 로봇과 동물들의 그림을 그려댔던 것과 같았다. 아이들에겐 10년이 상상할 수 없는 숫자였기에, 한 수 천년은 지나야 이뤄질 법한 일들을 예상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룹 신화 역시 그랬다. 어느 한 잡지에서 신혜성은 10년 뒤 자신의 모습으로 트로트가수 혹은 멋진 카페 주인을 상상했다. 앤디는 미국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 것 같다고 했다. 이민우는 디자이너가, 전진은 한국 최고의 기획사 사장, 에릭은 전문 래퍼나 프로듀서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심지어 김동완은 애아빠, 직업군인 혹은 엔지니어를 답변으로 썼다.
어느 정도 비슷한 멤버들도 있지만, 놀랍게도 이들이 생각하는 10년 뒤에는 신화가 없었다. 당시 아이돌로서 지닌 시간감각으로는 ‘신화 데뷔 10주년’은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인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랬던 신화는 데뷔 20주년을 바라보는 최장수 그룹으로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요즘 데뷔하는 아이돌 나이의 시간만큼 대중 앞에 서고 팬들과 함께해온 것이다. 10대에 데뷔한 신화는 20대, 30대 전부를 신화로서 보내고 있다. 곧 40대를 바라보는 지금까지, 반평생을 말이다.
신화는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 어찌 보면 신화가 정말 대단한 이유는 장수 그 이유보다도,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노력 때문이다.
신화는 물리적인 시간의 바람을 고스란히 맞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과 강도에 맞춰 끊임없이 변모해왔다. 후배 아이돌에게 그리고 팬덤의 변화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치열한 고민 끝에 자신들만의 것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나이가 꽤 있는데 체력은 괜찮냐”는 질문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이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체력의 좋고 나쁨을 떠나, 신화는 그 나이대에 맞는 멋을 알고 그걸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내년에 맞을 20주년에는 무엇을 보여줄까 새롭게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화는 자신들이 만나 데뷔를 하게 된 것을 ‘운명’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리고는 과거에도, 지금도 그래왔듯 앞으로도 쭉 ‘신화’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데뷔 때와 달리, 이제 멤버들은 먼 미래에도 신화를 그리게 됐다.
20년이 흐른 지금, 그렇게 운명처럼 만난 신화는 부지런히 달리며 또 다른 운명을 그려가고 있다. ‘장수 아이돌’ 타이틀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들 스스로 깨고 나아가는 것, 그래서 영원한 신화로 남는 것, 그게 바로 신화의 빅픽처인 셈이다.
이소희 기자 lshsh324@naver.com